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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之窈之齋</title>
		<link>http://textgarden.net/blog/</link>
		<description></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Sat, 06 Mar 2010 20:42:3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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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20100306 감상 몇 개와 잡담</title>
			<link>http://textgarden.net/blog/262</link>
			<description>0. 부제는 ‘&lt;ins&gt;그럼 일은?&lt;/ins&gt;’ 되겠다. &lt;br /&gt;
심각한 도피 증세로, 딴 짓 엄청 했다.&lt;br /&gt;&lt;br /&gt;
1. 《미스터 브레인Mr. Brain》&lt;br /&gt;
기무라 타쿠야 나오고, 범죄물이라고 해서 봤다. 다 보고 ‘이건 영웅물이구나’ 결론 냈다. 여덟 편밖에 되지 않고 사람은 제법 나오는데 캐릭터가 없다. 타쿠만 보여. 게다가 그걸로 끝나. 이거 본 사람들 반응이 《히어로》랑 이어지는 이유도 알겠고. 뭐, 내가 타쿠를 좋아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보는 거지, 그 외에는 볼 게 없잖아. 출연진 면면도 썩 훌륭하던데 어째 다 그렇게밖에 못 쓰냐. 중간에 많이 울기도 하고 고민도 했지만, 솔직히 그게 이 드라마의 질을 높여 준 건 아니므로. 그래도 타쿠 간만에 보니 좋더라.&lt;br /&gt;&lt;br /&gt;
2. 《너는 펫》&lt;br /&gt;
《미스터 브레인》이 너무 실망스러워서 위안용으로 뒤지다 봤다. 《보스Boss》와 놓고 고민하다가 나도 달달한 것 좀 보자 싶어서 먼저 이걸 집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딱히 썩 좋지도 않았다. 마츠모토 준은 늘 말하듯 어딘지 짐승 같은 데가 있어서 펫이 어울렸고, 고유키는 내가 원래 좋게 기억하는 사람이어서 그럭저럭. 하스미 선배로 나오는 배우는 묘하게 이름이 외워지지 않는데, 늘 모호한 조연으로 나오는 모습을 본다. 신기한 건, 아무리 봐도 미남도 훈남도 아니건만 멋진 캐릭터로 나온다는 점. 하물며 머리도 좋아 보이지 않는데 김전일 군의 호적수로 나오기도 했지. 보랏빛 장미도 들었고 말야.&lt;br /&gt;&lt;br /&gt;
결국 원작은 어떤가 궁금해져서 다운 걸었다. 변명이지만, 요새는 만화책을 빌려 볼 곳이 없다. 어떤 줄도 모르고 열네 권이나 살 수도 없고. 받는 데 좀 걸려서, 어제에야 시작해서 밤새 완료했음&lt;span style=&quot;color: #8E8E8E&quot;&gt;(부제를 상기해 주시라;)&lt;/span&gt;. 짧게 압축한 드라마가 원작보다 훨씬 낫기야 어렵지만 드라마도 제법 잘 만들었구나 싶었고, 원작은 원작의 맛이 있구나가 간단 감상평. 그보다는 이 작가의 센스가 마음에 들었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컴퓨터로 봐서 그럴 듯. 종이책으로 넘겨 가면서 보고 싶다. 종이책과 전자책의 문제는 아니고, 아니,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나. 좌우간 스캔한 책을 컴퓨터로 보는 건 그다지 좋지 않다.&lt;br /&gt;&lt;br /&gt;
C는 남녀 주인공이 모두 성장해서 좋았다고 기억하더라. 난 역시 별 생각이 없다. 그러니까 종이책……; 만홧가게 만들어 주세요, 흑. 디테일이 미끄러진단 말야.&lt;br /&gt;&lt;br /&gt;
3. 《보스》&lt;br /&gt;
본 드라마 중에 그래도 얘가 제일 나았다. 주인공인 아마미 유키를 지나가는 화면으로 설핏 봤을 때는 깜짝 놀랐다. 헉, 이 사람이 시청률의 여왕이라고? 이건 어딜 봐도 &lt;span style=&quot;color: #8E8E8E&quot;&gt;(얼굴이)&lt;/span&gt; 남자잖아! 트랜스젠더라고 해도 믿겠다! 그러나 정작 드라마를 시작하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더라. 멋져. 그럼에도 왠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풍기는 오오라가 이상해서 검색. 어쩐지, 다카라즈카. 완전 납득.&lt;br /&gt;&lt;br /&gt;
망가진 다케노우치 유타카도 완전 깜찍. 이 남자는 정말 목소리까지 범죄야. *&gt;_&lt;* 마지막 회에 특별출연으로 나온 소리마치 다카시는 정말 아니던데, 다케노우치는 여전히 매력적. 토다 에리카는 《라이어게임》보다 이런 쪽이 낫지 싶고. 기치세 미치코는 이하생략;&lt;br /&gt;&lt;br /&gt;
진지한 인간이라, 이런 오락물을 보면서도 고민한다. 주인공 오오사와 에리코가 보여 주는 인간상은 대체 무얼까 하는. 결국 이것도 영웅물? 가끔씩 기무라 타쿠야 같은 모습도 보이고.&lt;br /&gt;&lt;br /&gt;
4. 도쿄지헨, 《스포츠スポーツ》&lt;br /&gt;
주문 넣기 전에 들어 봤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앨범을?’ 하고 조금 당황했다. 지금은 잘 듣는 중인데 일단 귀에 꽂힌 곡이 하나 있어서 집에서는 앨범을 외출할 때는 그 곡 하나만 듣는다. 우키와 이치의 조화는 여전히 마음에 든다. 시나 링고는 늘 그냥 그렇고. 얼굴 고치는 건 그렇다고 치고 교태만 좀 덜 부려도 좋겠는데. 그래도 나오는 앨범을 별 무리 없이 계속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다행.&lt;br /&gt;&lt;br /&gt;
5. 마무리&lt;br /&gt;
엊그제 투니버스의 《나루토 질풍전》을 보는데&lt;span style=&quot;color: #8E8E8E&quot;&gt;(본편에 비하면 한참 뒤처져 있음. 그러나 본편 따위 궁금하지 않음;)&lt;/span&gt; 이건 아무리 봐도 카카시 팬을 위한 서비스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서클렛 날아가고 마스크가 약간 찢어진 카카시 모습&lt;span style=&quot;color: #8E8E8E&quot;&gt;(거기에 손원일 성우 목소리!)&lt;/span&gt;이 너무 섹시해서 보는 내내 넋 놓고 정신줄 놓고 침 질질 흘렸다. &lt;span style=&quot;color: #8E8E8E&quot;&gt;(회상하자니 또 정신이 아득……;)&lt;/span&gt;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아, 이 나이 먹고 아직도 2차원 캐릭터에 넋이 나가는 내가 너무 어이가 없는 거지. 심지어 현실성도 없는 캐릭터잖아. 좋아한다는 게 어째 카카시와 키스케&lt;span style=&quot;color: #8E8E8E&quot;&gt;(이건 《블리치》)&lt;/span&gt; 같은 캐릭터냐고. 이런 사람은 현실에 없음. 설사 있어도 날 좋아할 리 없잖아. 앉아서 혼잣말을 하며 꼴값과 삽질을 하다가, 아니, 바로 얼마 전에 기무라 타쿠야와 다케노우치 유타카도 좋다고 열광했으니 3차원도 가능하잖아, 괜찮아, 괜찮을 거야, 위안했는데, 현실성 없는 2차원 캐릭터나 현실성 없는 3차원 캐릭터나 무슨 차이가 있냐. 네모난 평면 텔레비전에서 뛰어노는 2차원인 건 매일반이잖아. 결국 자폭. 역시나, 아마 난 안 될 거야, 그럴 거야. 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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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나루토 질풍전》</category>
			<category>《너는 펫》</category>
			<category>《미스터 브레인Mr. Brain》</category>
			<category>《보스Boss》</category>
			<category>《스포츠スポーツ》</category>
			<category>고유키</category>
			<category>기무라 타쿠야</category>
			<category>기치세 미치코</category>
			<category>다케노우치 유타카</category>
			<category>도쿄지헨</category>
			<category>마츠모토 준</category>
			<category>손원일</category>
			<category>시나 링고</category>
			<category>아마미 유키</category>
			<category>영웅물</category>
			<category>오가와 야요이</category>
			<category>우라하라 키스케</category>
			<category>우키구모</category>
			<category>이자와 이치요</category>
			<category>일본드라마</category>
			<category>토다 에리카</category>
			<category>투니버스</category>
			<category>하타케 카카시</category>
			<author>(JIYO)</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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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textgarden.net/blog/262#entry262comment</comments>
			<pubDate>Sat, 06 Mar 2010 17:31:0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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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00227 아무도 알 수 없는</title>
			<link>http://textgarden.net/blog/261</link>
			<description>0. &lt;br /&gt;
미리 말하자면, 술 마셨음. 맥주 두 병쯤? 취했다고 말하면 취했고 아니라면 아니라고 할 정도. 아무려나 일단 이실직고.&lt;br /&gt;&lt;br /&gt;
1.&lt;br /&gt;
폴리니의 쇼팽 《전주곡》 음원 뜨기 귀찮아서 다운을 걸었는데, 하나같이 별로였다. 제길. 받는 것도 오래 걸리고 기껏 받았더니 음질 개판이거나 튀고. 이 고생을 하느니 그냥 내가 내 음반으로 음원 뜨고 말지. 하지만 코르토는 좋았다.&lt;br /&gt;
가끔 확 마음에 걸리는 연주자를 ‘개길’ 때가 있다. 들어야지 하면서 미루는 사람.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좌우간 그런 사람. 코르토가 딱 그랬는데, 이 사람의 쇼팽 《연습곡》을 받아 듣고는 한밤중에 깔깔 웃었다. 아우, 왕창 재밌다, 이 사람 연주! 미친 놈 같아. 장난 아닌 미스터치에도 이렇게나 멋지다니. 《전주곡》도 마찬가지. 그런데 흔히 말하는 그냥 미친 놈 아니고, ‘광인’의 느낌. 미치려면 이렇게 우아하게 미쳐야지 싶은. 햇빛이 아니라 달빛에 미친 사람 같은.&lt;br /&gt;
여전히 폴리니의 연주를 좋아하지만, 좀 전에 겨우 찾아 들은 샹송 프랑소와의 쇼팽 〈발라드 4번〉이 끝내주듯, 코르토의 쇼팽 연주도 굉장하다. 이래서 난 다른 작곡가로 잘 가지 못한다. 쇼팽과 베토벤과 바흐만으로도 이렇게 들을 연주자가 많은걸. 난 바보라서, 더 넓히기는 힘들어. 세 사람만으로도 세상이 꽉 차. 여기에 더 보태면 죽을지도.&lt;br /&gt;&lt;br /&gt;
2.&lt;br /&gt;
염오와 혐오는 다르다. 난 나 자신을 염오한다. 지긋지긋하다는 쪽. 혐오는 싫은 거지만, 염오는 지겹고 물린다는 의미다. 이 나이 먹도록 이 모양 요 꼴의 심신을 가진 내가 참 염오스러운 거다. 가끔 사람들은 순간의 나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싫어하는 건가 생각하지만, 염오다. 그게 쌓이고 쌓여서 존재 자체가 참 지겨워지는 순간이 잦아지는 거. 그럴 거면 차라리 죽어라 싶지만, 죽는 게 쉽냐. 자살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뭐, 다들 알겠지만.&lt;br /&gt;&lt;br /&gt;
3.&lt;br /&gt;
그래도 매일 세상을 보면서 감동한다. 올림픽 같은 거 보면서, 남들이 어떤 이념과 사상을 담든 그들의 열정에는 감동한다. 뭐라고 하든 하나를 향해 달리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다우니까. 해질녘의 천정부터 지평선까지의 푸른빛 그라데이션이 아름다운 것처럼, 잔칫날 손님 대접으로 전전긍긍하는 어머니 모습도 아름답고, 배 속의 아이를 갖은 상념으로 고민하는 동생의 모습도 아름답다. 내가 듣고 보는 세상은 대체로 몹시 아름답다. 내가 제일 밉지. 하핫.&lt;br /&gt;&lt;br /&gt;
4.&lt;br /&gt;
올해까지다,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올해까지라고 생각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그럴 자격이 있기는 할까. 그래도 되는 걸까. 대체 그래도 되는지 마는지는 누가 결정하는 걸까. 아아, 이 나이 먹도록 이렇게나 혼란스럽다. 빌어먹을 공자 할배는 마흔에 불혹이라던데, 우스갯소리처럼 마흔이면 유혹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혹이라면, 난 차라리 기쁘겠다. 난 여전히 유혹에 약하고 잘 혹하고 흔들리고 어쩔 줄 모르고 아는 바 없고 가야 할 길을 모른다. 새해가 시작되고 두 달째, 음력으로도 이제 벌써 보름이 된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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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JIYO)</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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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8 Feb 2010 02:18:0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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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00220 길을 걷다</title>
			<link>http://textgarden.net/blog/260</link>
			<description>운동을 마치고 도서관에 들러야 해서, 걷기로 했다. 걷다가, 가지 않았던 길로 가 보기로 했다. 덕분에 꽤 돌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예상과는 사뭇 다른 길 짜임이었다. &lt;br /&gt;
낯선 도시든 아니든 낯선 길은 좋다. 모르기 때문에 두렵고, 두렵기 때문에 신나고, 신나기 때문에 즐겁다. 몇 년 전 베이징 골목길을 돌 때 해 떨어진 뒤에는 어슬렁거리지 말라는 선배의 충고가 아니었다면, 난 두근거리며 가로등도 없는 좁은 골목길들을 기웃기웃 헤매고 다니다 사고를 냈을지도 모른다. 알아볼 수 없도록 변한 베이징의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참 좋았다. 처음으로 전라도에 혼자 여행을 갔을 때도, 어쩔 줄 몰라하는 두려움은 오래 가지 못했고, 무슨 일이 닥칠지 몰라하는 두려움 그러니까 기대로 바뀌었다. 혼자 했던 첫 여행은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을 남겨 주었다.&lt;br /&gt;
낯선 길을 걷는 건 즐겁다. 길을 잃고 헤매는 순간에도 즐겁다. 새롭고 낯선 길. 두근두근하다. 어떻게든 되겠지. 어울리지 않게 낙천적이다.&lt;br /&gt;
어울리지 않게. &lt;br /&gt;
몸으로 부딪칠 때처럼, 살아가는 길에 대해서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에서 이 즐거운 정신이 방황하게 된 걸까. 사실은 ‘어떻게든 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일까. 하지만 어쨌든 길은 걸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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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JIYO)</author>
			<guid>http://textgarden.net/blog/260</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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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1 Feb 2010 03:13:4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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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00214 쉿!</title>
			<link>http://textgarden.net/blog/259</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나이 든 벼가 고개 숙이는 법을 배울 때까지.&lt;/div&gt;</description>
			<author>(JIYO)</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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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4 Feb 2010 17:17:41 +0900</pub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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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00208 꿈을 꾸다</title>
			<link>http://textgarden.net/blog/258</link>
			<description>꿈에 그가 나왔다. 이제는 얼굴도 목소리도 느낌도 윤곽도 기억나지 않는데. 아주 드물게 꿈에 한번 나오면 꿈에서도 흠칫 놀랄 정도로 선연하게 모든 게 재현된다. 그리고 깨어나면 또다시 망각. 그에 관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꿈에서만 선명하다. 그가 꿈에 나와 좋으냐고 물으면, 싫으냐고 물으면, 모르겠다. 보고 싶으냐고 물으면, 보고 싶지 않으냐고 물으면, 모르겠다.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겠다. 잘 지내기를 바라는지 물으면,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지 물으면, 역시 모르겠다. 이렇게나 오래되었는데도. 그래, 이렇게나 오래되었는데도.</description>
			<author>(JIYO)</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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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8 Feb 2010 16:45:51 +0900</pubDate>
		</item>
		<item>
			<title>20100207 손톱 깎기</title>
			<link>http://textgarden.net/blog/257</link>
			<description>*&lt;br /&gt;
손톱 단장은 요즘 상식에 속한다. 운동하러 가면 어쨌든 손톱에 색이 없는 사람이 거의 없다. 열에 아홉은 다채로운 색과 무늬의 손톱을 자랑한다. 성격도 그렇고 이모저모 귀찮기도 해서 엔간하면 손톱을 짧게 깎기만 하는 나로선 부러운 경지. 단색만 칠한 사람들은 보통 혼자 하는 거라던데 네일숍이 부럽지 않게 잘 칠한다.&lt;br /&gt;&lt;br /&gt;
색이 지워지기 시작할 때 잘 지우고 새로 바르는 그 일을 어떻게 그렇게 잘 감당할까. 가끔은 내 게으름에 자괴감이 든다. 손톱 긴 걸 참지 못해 조금만 자라면 잘라 버리는데, 그나마도 귀찮아서 이렇게나 잘 자라는 손톱을 원망한단 말이지.&lt;br /&gt;&lt;br /&gt;
그런데 요새 또 바람이 들어 뭔가 바르고 싶어졌다. 뭐,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예전에도 한때는 까만색을 바르고 다녔고, 한때는 뻘건색을 바르고 다녔다. 바짝 짧게 자른 손톱에도 어울릴 색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 까만색이나 빨간색은 짧은 손톱에도 괜찮았다. 바람 불었을 때 열심히 바르고 놀아야지. 及時行樂이다.&lt;br /&gt;&lt;br /&gt;
**&lt;br /&gt;
손톱을 짧게 깎고 타이핑할 때, 정말 좋다. 손톱이 닿지 않고, 손가락 끝의 살로 자판을 치는 느낌은 뭔가 알알이 탱글탱글하다. 지금 그러고 있다. 히힛. 아, 모카포트의 커피바구니를 뺄 때는 불편하더라. 일장일단.&lt;br /&gt;&lt;br /&gt;
***&lt;br /&gt;
손톱을 깎을 때마다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lt;a href=&quot;http://jiyo.tumblr.com/post/375962619&quot;&gt;어떤 날의 〈출발〉&lt;/a&gt;. “은근히 자라난 나의 손톱을 보니 난 뭔가 달라져 가고.” 손톱을 깍둑깍둑 잘라 내는 동안 머릿속에는 이병우가 ‘하루하루 내가 무얼 하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거진 비슷한 의식주로 만족’하지만 ‘은근히 자라난 나의 손톱’이 달라진 나를 보여 준다고 읊조린다. 노래는 멋진 기타까지 더해 상큼발랄한 연주를 깔고 있지만 쓸쓸하다. 멀리 떠나자는데도 난 참,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쓸쓸하다. 이병우의 목소리 때문인가.&lt;br /&gt;&lt;br /&gt;
좌우간 오늘도 손톱을 깎았다. 뇌내 배경음악 〈출발〉을 들으며, 어디에도 떠나지 못하고, 가라앉지도 못하고 그저 지표에서 발을 살짝 띄운 채 둥둥.&lt;br /&gt;&lt;br /&gt;
&lt;span style=&quot;color: #8E8E8E&quot;&gt;(오후9시경: 아무래도 이상해서 검색. 이 노래 보컬이 이병우더라. 난 왜 조동익이라고 알고 있었지? -_-a 그래서 수정.)&lt;/span&gt;
</description>
			<category>〈출발〉</category>
			<category>손톱</category>
			<category>어떤 날</category>
			<category>이병우</category>
			<category>조동익</category>
			<author>(JIYO)</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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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textgarden.net/blog/257#entry257comment</comments>
			<pubDate>Sun, 07 Feb 2010 17:13:02 +0900</pubDate>
		</item>
		<item>
			<title>20100204 지껄임</title>
			<link>http://textgarden.net/blog/256</link>
			<description>스터디 가기 전, 커피를 마시며 다 읽지 못한 스터디용 소설을 읽는다. 덮는다. 아이고,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괴롭다. 어떻게 발뺌해도 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엔간하면 남의 흠을 자꾸 들추고 싶지는 않다. 감싸는 게 아니라, 내 코가 석 자라서. 내 잘못은 셈할 수도 없으니까 어지간하면, 그 사람들도 힘들게 일하고 애썼는데 그랬을 거라 믿고 싶으니까. 뭐, 출판계 일하는 사정도 다들 어슷비슷하고.&lt;br /&gt;&lt;br /&gt;
그래도 슬픈 건 슬픈 거고 괴로운 건 괴로운 거다. 트위터에도 투덜거렸지만, 공부라고 생각하고 소설을 읽으면 참 괴롭다. 소설이 재미있으면 그런 생각을 덜고 갈 텐데, 재미없으면 이건 고문이 따로 없다. 모름지기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 소설이 재미없으면 대체 그걸 어떻게 읽냐. 최소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장을 넘기게는 만들어 줘야 한다.
그 와중에 그걸 막는 책이 있다. 재미는 있는데 도저히 문장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소설. 줄타기처럼, 그 경계에서 왔다 갔다. 소설 내용도 그저 그런데 문장도 아니올시다 이러면 그저 울고 싶다.&lt;br /&gt;&lt;br /&gt;
다른 언어권의 소설은 모르겠다. 중국어권은 내가 요즘 읽기 때문에 몇 마디 할 수 있으려나. 도대체 마음 놓고 추천할 소설이 거의 없다. 다른 언어권 소설도 이럴까. 아, 그래, 영어권과 일본어권은 대충 알 것도 같다. 나 솔직히 《밤의 피크닉》은 번역 때문에 진도 못 빼고 중단했다. 내용은 재미있으니 언젠가는 읽을 것 같지만 번역은 좀 아니다 싶다&lt;span style=&quot;color: #8E8E8E&quot;&gt;(미리 말하지만 잘한다 못한다를 논하는 게 아니다.)&lt;/span&gt;. 《살인의 해석》도 같은 경우였다. 이것도 ‘언젠가’는 읽겠지.&lt;br /&gt;&lt;br /&gt;
전에 어떤 역자 선생님이 그랬다. 우리나라 독자는 지금 일본어/영어의 번역투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반발 없이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중국어권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고. 그것도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말이 돼야지. 대놓고 하나하나 짚기는 이 좁은 바닥이 두려우니까 할 수 없고, 스터디를 위해 읽은 몇몇 소설 중에는 독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고도 온라인서점 독자서평은 꾸준했다. 나 그때 내 독해력을 의심했다. 그거 어떻게 이해했습니까? 나중에 그 소설 편집자 만나 물었더니 죽다 살았다고 하더라.&lt;br /&gt;&lt;br /&gt;
지금 읽는 소설은 좀 더 총체적이다. 일단 난 외래어 표기법은 딱히 고집부리지 않는다. 한 이야기 안에서 일관성만 있으면 상관없다. 이 책은 ‘물론’ 외래어 표기법을 지키지 않았다. 알아서 표기했고 일관성은 대체로 유지되는 듯하다. 그런데 번역이 이상하다. 거기에 교정교열이 되지 않았다. 낯선 문화에 대한 이야기일수록 책은 섬세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이 무심한 편집 상태라니. 읽으면서 짜증이 1포인트씩 적립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머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너무나 개인적인 취향이어서 말하기 민망하니 통과. 하지만 대놓고 할 소리가 아니라서 참을 뿐이지 정말 할 말 많다, 이 소설!!!&lt;span style=&quot;color: #8E8E8E&quot;&gt;(스터디에서 이 책이 채택되기를 간절히 바라던 사람이라 기대가 컸고 그만큼, 아니 그 이상 실망이 크다.)&lt;/span&gt;&lt;br /&gt;&lt;br /&gt;
공개적으로 하지는 않아도 사적으로는 많이 떠든 말인데, 난 학자가 소설을 번역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중국어권은. 소설을 소설로 보지 않고 학문 텍스트로 본다. 그래서 번역문이 재미없다. 한국어와 중국어의 문화와 언어 차이 따위는 가뿐히 무시하고, 원문 텍스트 쪽에 치우친다. 옮긴이의 말 같은 거 보고 있으면 뒷목을 잡는다. 독자더러 지금 공부하라는 거냐. 공부는 역자가 하고 독자는 재미있게 읽으면 된다. 달리 ‘深入淺出’이 아니란 말이지.&lt;br /&gt;&lt;br /&gt;
사실 이거 타이핑할 시간이면 조금이라도 소설을 읽어야 하는데, 영 읽히지가 않아서. 바로 저번 주에 읽은 소설이 훌륭해서 더 비교돼 그러나. 의무감으로라도 읽어야지 싶으면서도, 내가 원래 의무감 같은 게 없는 사람이라. 그냥 이거 올리고 타로의 피아노 들으면서 방금 아버지가 넘겨주신 군고구마 두 알 먹고 스터디 가야겠다. 가서 배 째지 뭐, 언제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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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번역</category>
			<category>소설</category>
			<category>책</category>
			<author>(JIYO)</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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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textgarden.net/blog/256#entry256comment</comments>
			<pubDate>Thu, 04 Feb 2010 17:01:15 +0900</pubDate>
		</item>
		<item>
			<title>20100201 책 잡담</title>
			<link>http://textgarden.net/blog/255</link>
			<description>이 집에 이사 올 때 다짐했다, 책장은 세 개로 끝. 더는 늘리지 않고, 읽은 책 중 더 읽지 않을 책은 내보내겠다. 그리고 일 년 반쯤 됐다. &lt;br /&gt;&lt;br /&gt;
친구에게 이 책 저 책 주면 고맙겠다 떼썼더니 정말로 줬다. 열두 권이나. 정말 고마워서, 온 날은 새벽인데도 방바닥에서 좋아서 굴렀다. 그 책들이 지금 책상 옆 책장 앞에 검토할 책과 함께 상자째 그대로 있다. 아무리 눈 씻고 책장을 뒤져도 둘 곳이 없다. 아니, 이럴 수가.&lt;br /&gt;&lt;br /&gt;
내가 알라딘에서 일정 정도 등급을 유지하는 이유는 거기서 책을 사기 때문이 아니라 생필품까지 사기 때문이다. 정말 책은 어지간하면 사지 않는다. 만화책도 요새는 새로 보는 책을 더 늘리지 않았고. 그런데 책장이 넘쳐 상자를 쌓다니. 공짜 책을 대체 얼마나 받은 거냐.&lt;br /&gt;&lt;br /&gt;
덕분에 정작 밴스 둘 자리가 없다. 곧 젤라즈니도 들일 텐데 어디에 두면 좋을지 모르겠다.&lt;br /&gt;&lt;br /&gt;
책 둘 자리가 없다는 말은 그간 책을 읽지 않았다는 말이다. 읽어야 내놓지. 스터디에 읽는 책은 엔간하면 도서관에서 빌려 보고, 도서관에 없으면 산다. 지금까지 산 스터디용 소설은 거의 C에게 넘길 예정. 문제는 아직 다 읽지 못했다는 거.
찬찬히 늘어가는 책도 무시할 수 없다. 만화책은 새로 보는 책을 만들지 않아도 기존의 책이 다음 권을 내면 늘게 돼 있다. 《맛의 달인》이나 《명탐정 코난》, 《원피스》 사는 사람은 용자. 《Q.E.D.》와 《은혼》으로도 버겁다. 이제는 잘 보지 않는 유시진을 내놓을까 하다 얼마 되지도 않아서 시큰둥. 강경옥 초기 작품은 버릴 수 없다. 어쩔 거냐. -_-;&lt;br /&gt;&lt;br /&gt;
이런 경우도 있다. 전에 가라타니 고진의 《윤리21》을 처음 읽을 때는 얼른 읽고 정리한 다음 남 줘야지 생각했다. 다 읽고 나서는 포기했다. 읽고 더 공부해야지 어딜 남 주냐, 건방지게. &lt;br /&gt;&lt;br /&gt;들이는 책은 두껍고 읽고 버리자 싶은 책은 얇다. 그나마 잘 읽지도 않고, 읽어도 아끼는 책만 읽으니 역시 제자리에 다시 꽂힌다.&lt;br /&gt;&lt;br /&gt;
또 있다. 일하다 보면 자료가 필요할 때가 많다. 올해는 《춘추좌씨전》이나 《한비자》 같은 고전 원서 번역을 좀 들일 작정인데 지금 같아선 어림도 없다. 그냥 포기하고 다시 인터넷에 의존해야 하는 건가 고민이다.&lt;br /&gt;&lt;br /&gt;
아니, 뭐, 다 떠나서 일단 좀 읽기나 하면 좋겠는데, 요샌 정말. 어째 해해년년 이 소리인데 도대체 늘지를 않는구나, 독서량. 빨리, 많이 읽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꾸준히 잘 읽기는 바란다. 근데 게임이나 하고 앉았지. 이런 주제에 무슨 ‘장인’ 취향에 ‘침엽수림’ 취향이니. 책이나 읽고 할 소리를.&lt;br /&gt;&lt;br /&gt;
아니, 그전에 책 보관 요령도 좀. -_-;
</description>
			<category>독서</category>
			<category>잡담</category>
			<category>책</category>
			<author>(JIYO)</author>
			<guid>http://textgarden.net/blog/255</guid>
			<comments>http://textgarden.net/blog/255#entry255comment</comments>
			<pubDate>Mon, 01 Feb 2010 18:22:57 +0900</pubDate>
		</item>
		<item>
			<title>이래저래 처절해</title>
			<link>http://textgarden.net/blog/254</link>
			<description>친구랑 채팅하다가 황인숙 시인의 시가 생각나 올린다. &lt;a href=&quot;http://textgarden.net/blog/176&quot;&gt;일전에도 말했듯&lt;/a&gt;, 언제나 고양이처럼 비둘기처럼 팔랑거릴 것 같던 그도 세월의 더께에 사뿐 내려앉기도 하는 느낌이다. 어떤 독자평을 보니 그게 슬펐던 모양이지만, 난 나이를 먹어도 변치 않는 얼굴 같은 게 더 무섭고 무겁다.&lt;br /&gt;&lt;br /&gt;

&lt;blockquote&gt;집을 나서기 전에 그녀는&lt;br /&gt;
꼼꼼히 거울을 본다&lt;br /&gt;
화장과 복장으로 완전무장됐는지&lt;br /&gt;
점검한다&lt;br /&gt;
블라우스는 고급 실크&lt;br /&gt;
청바지라면 하다못해 게스&lt;br /&gt;
서른일곱 살 그녀는&lt;br /&gt;
항상 높은 굽 구두로 키를 돋우고&lt;br /&gt;
위풍당당 발을 내딛는다&lt;br /&gt;
마이너스 통장이 바닥나도록&lt;br /&gt;
몸단장을 하는 그녀의 다짐&lt;br /&gt;
“나는 럭셔리하게 살 테야!”&lt;br /&gt;
생활의 때에 찌든 모습은 주부들에겐 훈장이지만&lt;br /&gt;
독신녀에겐 아니올시다&lt;br /&gt;
누추하면 약해 보이고&lt;br /&gt;
약해 보이면 위험에 처한다네&lt;br /&gt;
럭셔리한 삶은 독신녀의 안전책.&lt;br /&gt;
스스로를 지키는 방패.&lt;br /&gt;&lt;br /&gt;
&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럭셔리한 그녀〉, 《리스본行 야간열차》, 71쪽&lt;/div&gt;&lt;/blockquote&gt;&lt;br /&gt;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왠지 나 자신이 비웃음 당하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그냥 쓸쓸하고 처절하고 그렇다. 얄팍하지만 결국 이것밖에는 없다 그러쥐고 버둥대는 모습이 화장 잘 하지 않고 게스 청바지를 입지 않은 들 나와 뭐 그리 다르겠냐 싶어서. 얕보이고 싶지 않아 더 앙칼지게 굴고, 그래서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말을 귀에 딱지 얹히도록 듣는 여자들. (나야 천성이 까칠이라 ‘나이 먹어도 여전하구나’로 정리되지만.) 그냥 다 안쓰럽다.&lt;br /&gt;
그런데 바로 그 왼쪽 옆 쪽에 같지만 다른 느낌의 시가 또 한 편 있다.&lt;br /&gt;&lt;br /&gt;
&lt;blockquote&gt;걷는 게 고역일 때&lt;br /&gt;
길이란 &lt;br /&gt;
해치워야 할&lt;br /&gt;
‘거리’일 뿐이다&lt;br /&gt;
사는 게 노역일 때 삶이&lt;br /&gt;
해치워야 할&lt;br /&gt;
‘시간’일 뿐이듯&lt;br /&gt;&lt;br /&gt;

하필이면 비탈 동네&lt;br /&gt;
폐지를 모으는 할머니들&lt;br /&gt;
오늘 밤도 묵묵히&lt;br /&gt;
납작한 바퀴 위에&lt;br /&gt;
둥드러시 높다랗게 비탈을 싣고 나른다&lt;br /&gt;
비에 젖으면 몇 곱 더 무거워지는 그 비탈&lt;br /&gt;
가파른 비탈 아래&lt;br /&gt;
납작한 할머니들.&lt;br /&gt;&lt;br /&gt;
&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세상의 모든 비탈〉, 《리스본行 야간열차》, 70쪽&lt;/div&gt;&lt;/blockquote&gt;&lt;br /&gt;
깜찍하고 발칙한 시선에 시간과 발효가 더해지면 어떻게 될지, 작은 단서. 다음에도 계속 이 시인의 시집을 기다리겠지.</description>
			<category>〈럭셔리한 그녀〉</category>
			<category>〈세상의 모든 비탈〉</category>
			<category>《리스본行 야간열차》</category>
			<category>삶</category>
			<category>황인숙</category>
			<author>(JIYO)</author>
			<guid>http://textgarden.net/blog/254</guid>
			<comments>http://textgarden.net/blog/254#entry254comment</comments>
			<pubDate>Mon, 25 Jan 2010 13:40:25 +0900</pubDate>
		</item>
		<item>
			<title>어이없는 연상</title>
			<link>http://textgarden.net/blog/253</link>
			<description>*&lt;br /&gt;
지난 연말연초에 내 기억에 남는 기사 중 하나는 &lt;a href=&quot;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95364.html&quot;&gt;CJ의 온미디어 인수&lt;/a&gt;였다. 케이블방송의 양대 산맥이 하나로 합쳐졌다. &lt;a href=&quot;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2/24/2009122401272.html&quot;&gt;CJ는 온미디어와 판권 경쟁으로 쓰였던 돈을 제작 투자에 쓰겠다고 했다&lt;/a&gt;. 종합편성채널에 뛰어드는 문제에 대한 소문도 돈다. CJ는 부정하지만. 그리고 나 역시 거기까지는 잘 모른다.&lt;br /&gt;&lt;br /&gt;
그냥 난 시청자로서 몹시 울적하다. 자체 제작보다 해외 방송 수입이 더 많은 온스타일이 자체 제작을 열심히 하는 올리브TV나 TVN보다 낫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난 그래도 올리브TV나 TVN은 보지 않는다. 엠비시게임보다 온게임넷을, 챔프나 애니박스보다 투니버스를, CGV보다 OCN과 스토리on을 본다. CJ계열 케이블방송보다 온미디어가 내는 분위기가 좋다.&lt;br /&gt;&lt;br /&gt;
온미디어 쪽은 자유분방하고 세련되고 세심하다. CJ 쪽은 과하거나 부족하고 거칠다. 불만이 없지는 않지만, 굳이 나누자면 그렇다. 자막의 정성이나 선을 넘지 않는 진행과 편성, 지상파에서 볼 수 없는 감각적인 유쾌함. 그것이 이제 CJ미디어왕국의 휘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난 무척 아쉽다. 앞으로 겹치는 채널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승인 이후에 판가름 나겠지.&lt;br /&gt;&lt;br /&gt;
**&lt;br /&gt;
경쟁은 젬병이지만, 독점을 하느니 경쟁을 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CJ의 인수가 아쉬운 이유는 물론 인수하는 쪽이 CJ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독점이 되기 때문이 더 크다. CJ가 물론 5월의 방통위 승인 이후 멋진 케이블방송 세계를 보여 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난 독점은 싫다.&lt;br /&gt;&lt;br /&gt;
독점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고, 자극이 없고, 재미가 없다. 그 독점이 아무리 선량해도 독점이라는 이유만으로 장점이 떨어져 나간다. 견제가 없는 독점이 선량하면 얼마나 오래 선량할 것인가. 미야자키 이치사다가 옹정제의 훌륭한 독재 정치를 칭찬하면서도 결국 그것이 독재라서 문제라고 지적했듯, 《은하영웅전설》에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아닌 양 웬리가 어쨌든 민주주의 체제의 진영에 속했던 것처럼, 세 솥발이 견제를 통해 백성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듯, 독점은 많은 가능성을 없앤다. 뭐, 무엇보다 재미가 없지. 달리 스카이워커가 필요한 게 아니다.&lt;br /&gt;&lt;br /&gt;
***&lt;br /&gt;
그러나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중요하다’는 말은 지나치게 낙천적인 이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사람들은 열 걸음을 걷는 한 사람에 열광하고 열 사람의 한 걸음에 답답해한다. 내가 그 열 사람 중 하나라는 생각보다 열 걸음을 걷는 한 사람이 단번에 열 사람을 그 선으로 끌어당기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역사도 언론도 열 걸음을 걷는 한 사람을 이야기하지 한 걸음을 걷는 열 사람은 잘 말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열 걸음을 걷는 한 사람은 멋지니까, 훌륭하니까, 귀감이 될 만하니까, 우리의 꿈을 맡겨도 될 것 같으니까, 우리가 따라가야 할 사람 같으니까. 그래서 언제나 영웅은 필요한지 모르겠다. 아무리 비틀리고 힘들고 개인 사정이 있을지언정, 슈퍼맨이든 스파이더맨이든 가면라이더든 손오공이든 전우치든 쿠리우 코헤이든. 로또 같은 것일지라도.&lt;br /&gt;&lt;br /&gt;
그래, 그러니까 나도 좀 구해 주라, 영웅아. 세상 걷기 참 녹록지 않다.</description>
			<category>CJ</category>
			<category>독점</category>
			<category>영웅</category>
			<category>온미디어</category>
			<category>케이블방송</category>
			<author>(JIYO)</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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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3 Jan 2010 16:20: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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