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확 이승철이 당기는 거다. 그러니까 난 일할 때 가요를 듣지 않는다. 가사가 들려서 일에 집중할 수가 없으니까. 특히 노래 잘하고 가사 죽이면 직격탄. 일하다 말고 사망하는 경우가 다반사. 아니, 클래식 듣다가도 가슴을 쥐어뜯는데 가요는 말할 나위도 없잖아. 그러다 보니 자연히 가요를 안 듣게 됐다. 비슷하게 좋은 중국 노래도 안 듣는 편이다. 장쉐유張學友의 초기 앨범은 아주 미친다. 내겐 김광석의 3집만큼의 파괴력을 자랑한다. 김광석의 3집을 듣고는 5월 볕 좋은 날에 그냥 우울증 걸려 죽는 줄 알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승철이 당기는 거다. 이승철이라니, 이승철이라니. 난 원래 이승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부활 시절 때도 노래 몇 곡뿐이었고, 이후에는 너무 팔랑거려서 무시했고, 다시 화려하게 복귀했을 때도 소귀에 경을 읽었다. 그러다 ‘오!’ 하고 귀가 저절로 기울여졌던 노래가 〈열을 세어 보아요〉였다. 게다가 이루릴이 옆에서 노래를 했다, 아주. 정말 노래 잘하지 않아요? 이 정도로 노래 잘하는 사람 흔치 않아. 조였다 풀었다 하는 게 아주 예술이야. 물론 그때 내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래? 잘하긴 하지. 콘서트에 갔을 때도 옆에서 열광하는 이루릴에 비해 난 그냥 그랬다.

요즘은 1집부터 최근 앨범까지 싹 받아서 한번 훑은 다음에 고른 노래가 조로록 푸바에 탭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일하다 듣는 정도가 아니다. 시도 때도 없다. 물론 심장도 시도 때도 없이 맛이 간다. 음악 듣기 가장 좋은 시간인 새벽에 들으면 미친다. 대상도 없는 사랑에 빠져 있는 기분이 든다. 도대체 용서가 안 돼서 보지 않았던 영화 《비천무》의 음악 〈말리꽃〉은 이번에 처음 듣는데, 듣다 보면 만화 《비천무》로 화면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와, 노래는 이렇게 좋은데 영화는 그 모양이었구나. 이 절절함이라니.

아마 그 시작은 얼마 전에 잠깐 나갔던 송추의 한 카페일 테다. 카페 안에서 계산 마치기를 기다리는데 이승철의 노래가 나왔다. 아주 큰 스피커에서 나오는 그의 목소리가 그날의 그 화창한 공기에 시원하게 울렸다. 그 소리가, 큰 스피커에서 쏟아지는 소리가 만지고 싶어서 스피커 바로 앞으로 가서 몸을 쭉 뻗어 소리 나오는 곳에 손을 댔다. 몸으로 듣는 소리는, 참 좋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아는 것은 다르구나 생각한다. 이승철 노래 잘하고, 그 꺾임의 기막힘, 그 바이브레이션의 숨 막힘을 익히 아는데(가끔씩 튀어나오는 그 요상한 발음도 -_-+), 다시 귀와 심장이 반응하는 건 전혀 다르다. 가요의 때가 도래한 건가 생각하면서 이번엔 롤러코스터를 찾았다. 언젠가 들었던 1집과 2집이 썩 좋았던 기억이 났다. 그때의 감상은 마음에 드는 건조함이었는데 이번엔 어떠려나(감상 전 태그 작업 중;).

때가 때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승철의 저 기막힌 노래를 듣다가 문득 돌린 눈이 작열하는 햇빛과 무더운 열기라면 마음은 썰렁해지겠지. 서늘한 바람이 마음의 구멍으로 드나드는 기분이 드는 이맘때가, 빛은 강해도 그 어디에 언뜻 여백이 있어 보이는 지금부터가 딱 좋은 때 아닐까.
말 나온 김에 김광석까지 다시 들으면 가을 탈 준비는 완료인지도.

덧: 이승철의 바이브레이션은 가슴을 떨리게 하지만, 김경호의 바이브레이션은 뽕짝의 기운을 떨리게 한다(《은혼》 여는노래 들을 때마다 이건 뽕짝이냐 하고 외치는 1인;).
2008/09/10 10:03 2008/09/1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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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rowcop 2008/09/10 10:3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도 들을때마다 바닥깊숙히 꺼져들어가는 그런 음악이 있어요.
    노땐스의 질주라든지, 윤상의 너에게라든지,이승철의 1집-part2라든지.
    그중에 절정은 이소라의 바람이분다. 사람을 아주 죽여놓는게..

    • JIYO 2008/09/10 11:32  address  modify │ delete

      시기 맞춰서 그런 노래 들으면 아주 가지 않습니까? 마음에 초점이 맞지 않고 몽롱해지는 기분이랄까. 가끔은 마약 맞는 기분으로 그런 느낌도 좋지 싶어요. ^^

      이소라의 그 노래, 찾아보겠습니다. 오오.

  2. 이루릴 2008/09/10 12:0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말리꽃 정말 정말 좋죠. 이승철은 목소리 조율에 본좌라고 생각해요. 다른 가수들이 다시 불러도 그만에 소화할 수 있는 부분이 있잖아요. '밖으로 나가버리고'라던지. 나도 이승철 들어야겠어요.
    롤러코스터의 담담하게 사람 죽이기도 좋구요. 옛날에 정동진 가면서 한곡만 7시간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약간은 어찔~~하지만 -_-;
    가요를 들으시다니 므흣(진짜 오랫만에 쓰는 표현)하오.

    • JIYO 2008/09/10 12:50  address  modify │ delete

      내가 미성에 좀 거부감이 있나 봐. 파리넬리 목소리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지금도 카운터 테너 목소리는 쉽게 좋아지지 않거든. 그 '밖으로 나가버리고'도 앞에 굵은 목소리가 없었으면 별로라고 생각해왔고. 그래서 이 노래는 지금도 이승철 혼자 부르는 걸로는 안 들어.

      내가 가요 들으니 좋냐? 쳇.
      사진 보내든 올리든 하게 얼렁 답장이나 보내라. 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