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포스터가 제일 좋아요. 쓸쓸해서.
내가 몹시 사랑하는 탐정 포와로의 마지막 작품 《커튼》에는 자기 손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 범인이 나온다. (《커튼》을 보지 않았는데 앞으로 보실 분은 뒤에 갖은 내용 누설 있으니 피해 가십시오.) 그는 조용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을 관찰하고 한 사람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는 모습을 지켜본다. 십수 년도 전에 읽은 책이라 대충의 맥만 기억하고 있는데, 어쨌든 범인은 포와로의 친구 헤이스팅즈를 노리고, 포와로는 그걸 알아챈다. 그를 감옥에 넣기는 불가능하다. 사람을 죽인 이들은 모두 자기 탓을 하니까. 범인은 존재감조차 강하지 않아서 슬쩍 지나가는 말로 폭탄의 뇌관을 건드리지만, 누구도 그의 말 때문에 살인을 결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뇌 끝에 포와로는 그를 불러들여 죽이고 자살한다.
이 소설을 읽고 한참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포와로를 죽이지 않고 그 범인을 '처리'할 방법에 대해. 아니 이 귀여운 할아버지가 사라지다니!!! 포와로를 다른 작가가 쓰는 게 싫어서 죽였다는 크리스티 여사의 심정도 이해는 가지만, 슬픈 건 슬픈 거지.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합법적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세상에 합법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참으로 많다. 그 안에는 많은 것들이 숨어 있고, 그것들은 언제나 인간을 시험한다.
어릴 때 주기도문에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라는 구절을 이해하지 못해 고민했다. 친구들과 그 이야기를 했다가 ‘어른들도 시험은 싫었나 보지’ 정도의 우스개로 끝나기도 했고. 그러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인생은 선택의 갈림길로 점철돼 있다는 사실을. 사실은 언제나 시험이다. 손에 쥔 휴지를 그냥 바닥에 버릴지 말지 정하는 순간부터 눈앞에 있는 놈을 죽일지 말지 결정하는 순간까지 모두 선택이고 시험이다. 가끔은 선택이 너무 귀찮고 괴롭고 힘들어서 누군가 대신 해 주길 바라기도 한다. 최소한 의지처가 있으면 좋겠다고 원한다. 난 주기도문의 저 문구는 그 마음을 보여 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배트맨: 다크나이트》를 보면서, 조커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커튼》의 범인이 바라는 바(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내게는 중요하지 않다.)가 조커와 같든 다르든 간에, 그들은 끝없이 유혹하고 선택하게 만든다. 낮에는 부유한 사업가 브루스 웨인이고 밤에는 무법으로 법을 지키는 배트맨인 주인공 웨인-배트맨 역시 수없이 선택의 기로에 선다. 아버지를 위해 고담시를 지키던 그는 설마 미움 받는 자리가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역할이 부담스러워지면서 오랜 시간 사랑해 왔던 여인과 함께하고자 하지만, 그 또한 여의치 않다. 그는 늘 갈등한다. 눈앞의 조커를 치어 죽여 버릴지, 자신의 정체를 밝힐지, 배트맨을 계속해야 할지, 공중으로 날아간 조커를 구해야 할지.
내게 모든 사람의 갈등보다 배트맨의 갈등이 좀 더 와 닿았던 이유는 영화에서 그가 가장 강하게 하나의 개체로서 선택을 고민하기 때문이다. 투페이스의 ‘타락’마저도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왜 자신만 모든 걸 잃어야 하느냐는 이기적인 외침보다 결국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자기합리화를 하려는 마음은 다른 이들과 다를 바가 없다. 자기의 선택과 그 결과를 눈을 똑바로 뜨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그 시험이 괴롭고 힘든 사람들은 하늘에 타인에 마음을 맡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결국 결정하고 행동하는 건 자기 자신이다. 사람은 죄책감으로 타락할 수 있지 않은가.
배트맨은 아직 풀지 못한 수많은 고민과 갈등과 괴로움에 더하여, 자기 자리에서 도피하려 했던 마음과 레이첼의 선택에 대한 오해까지 한 몫으로 담아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고,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조커 같은 유혹자나 시험자는 언제나 내 곁에 있기 마련이다. 나 자신이니까. 인간의 선을 믿듯 인간의 악을 믿는다. 격렬한 싸움을 마치고 어둠으로 들어가 상처를 치료하면서 웨인-배트맨은 다시 한 번 자기 자신과 그가 앞으로 홀로 걸어갈 길을 응시할 것이다.
내게 《배트맨: 다크나이트》는 그런 배트맨을 위한 영화였다.
2008/08/1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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