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비자 이야기부터 잠깐 하자.

중국으로 들어가는 비자는 보통 대사관에서 받지만, 베이징의 경우는 30일 단기 체류자에 한해 공항 비자라는 것을 받을 수 있다. 공항에서 비자를 내주는 방식이라는데, 대사관 발급 비자보다 조금 싸다. 나는 혼자 갔으므로 딱 만 원 쌌다.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비자가 없고, 도착해서 입국 수속 전에 있는 비자 사무국 유리창 쪽에 서 있을 여행사 직원을 만나면 그 사람이 그 사무국에서 일을 처리해 내게 종이로 된 비자를 준다. 그걸 받아 입국 수속을 하면 만사 오케이(두 사람은 이상은 국내에서 받아서 출국 가능. 혼자 여행은 이모저모 서럽다. ㅠ.ㅠ).

그러나 말이 그렇지 완전 불안. 공항 비자를 해 주는 여행사와 통화하면서부터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제대로 거기에 내 서류를 보냈는지도 의심스럽고, 비행기를 타서는 공항까지 가서 그냥 돌아오는 거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하고.

물론 그럴 뻔했다. -_-; 아, 다시는 만 원에 쩔쩔매면서 공항 비자 받지 않겠다!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있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내 서류를 보더니 자기가 아니라면서 날 담당할 사람이 올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기다렸다. 안 왔다. 그 사람이 갈 때까지 안 왔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그 여행사로 전화를 했다. 그러니까 해외여행을 갈 때는 관련된 모든 전화번호를 적어 가져가는 게 좋다. 자동 로밍이 된다면 꼭 로밍해야 한다. 로밍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어흑.

그때부터 여행사와의 전화질이 시작됐다. 마침 점심시간이었던 것이다. 전화 안 받더라. 겨우 받는데 매번 다른 사람이 받아(‘담당자한테 연락해서 전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함흥차사여서 계속 다시 전화했다.)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하니 미치겠더라. 화를 버럭 내고, ‘지랄’을 한번 제대로 하고 났더니 그쪽에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지 담당자는 밤 비행기로 알았다고 한다. 전화 안 했으면, 밤까지 거기서 입국하는 사람들 구경하고 있었어야 했던 것이다. 액체류 반입 문제 신경 쓰기 귀찮아서 짐 다 묶어 수화물로 던진 내 여행 가방은 어딘가에서 하염없이 돌고 있었거나 분실물 보관 센터에서 울고 있었겠지.

나중에 온 직원은 너무도 미안해하고 땀에 절어 있어서, 그리고 가는 내내 미안해해서 처음에 따끔하게 한마디 한 후로는 더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는 분실물 센터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상처투성이가 된 내 짐을 찾아 주었고, 미안하다며 공항에서 숙소까지 데려다 주었다.

숙소는 금방 찾았다(가기 전에 거기 사진을 몇 번을 봤는데!). 바로 들어가 조용한 방을 달라고 한 후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짐을 정리한 다음 잠깐 나가서 밥 먹고 물 사고, 들어와 씻고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더니 《백가강단百家講壇》이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청나라 자희태후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었다. 강의하는 그 아줌마, 목소리 한번 정말 중국 여자 같다. 옛날에 내가 얼굴에 돈 던지고 싸웠던 아줌마 생각난다(아줌마가 하도 돈을 던져 거슬러 주길래 참다가 마지막 날 똑같이 돈을 던져 주고 한 판 붙었다; 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강의도 그저 그랬고 목소리도 무서워서, 게다가 새벽에 일어나 움직인 데다 공항에서 하도 신경을 곤두세웠더니 피곤해서 잠이 들어 버렸다.

가물가물 무슨 소리가 들려와 잠이 설핏 깼다. 미처 끄지 못한 텔레비전에서 고전극이 나오고 있었는데, 아직도 졸립건만 어쩐지 귀를 닫을 수가 없었다. 새우눈을 뜨고 드라마를 얼핏 보고 들으니 점점 더 집중이 됐다. 결국 꼼지락거리면서 일어나 앉았다. 오,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드라마다. 우리나라에서도 CSI의 영향을 받아 드라마가 만들어졌듯, 중국에서도 그런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한국에 돌아와서 알아보니 2005년인가에 만든 드라마라고 한다. 《대송제형관大宋提刑官》이라고 송나라 때의 인물로 고대 법의학의 시조인 송자宋慈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다. 오랜만의 고전물이라 자막이 있었지만 좀 어려웠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그대로 끝까지 다 봤다. 사건은 아직 미결. ‘내일을 기다리리라!’ 하고 정신을 차려 보니 저녁이더라. 계속 잔 게다. 첫날 일정도 그냥 날아간 거다.

혼자 야밤에 뭘 하리. 너무 우울해서 침대에 얼굴을 박고 자학 모드에 빠졌다.
2007/11/14 15:36 2007/11/1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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