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리니-소콜로프 사태’로 음악 감상에 차질이 생기면서(소콜로프가 죄 없는 건 아는데 심정적으로 그의 연주를 도저히 들을 수가 없었다. 이건 어쩌면 패배의 인정이겠지.) 다시 다른 음악들로 이동했다. 만년 밥인 지헨과 여름에 듣기 좋은 엠플로와 프리템포에 모카나 플리퍼스기타, 그리고 비 올 때 사람 심장을 사뿐하게 접어 주시는 재니스 이안. 하지만 어쩌다 급히 사게 된, 한 번 들은 뒤로 나 몰라라 외면했던 폴리니 연주의 쇼팽 《폴로네이즈》를 들으면서, 회의한다. 누가 내게……!

- 강좌 가는 길에 《씨네21》 표지의 기사에 혹해서 샀다가 《적벽대전》에 대한 20자평을 보고 비웃다. 두 사람이 ‘주유(주)윤발’이라면 별점을 더 주마고 써 놓았더라. 나도 그를 좋아한다. 하지만 저우룬파周潤發의 주랑이라면 대체 캐스팅을 어쩌란 거냐. 다 바꿔야 한다. 적벽대전은 어떤 면에서는 늙은 조조와 젊은 손권의 싸움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캐스팅은 연배에 적절하다. 물론 저우룬파의 주유는 멋있었으리라 상상한다. 그의 마초스러우면서 유연한 미소를 생각하면 괜히 온몸이 짜릿하다. 하지만 그러면 나머지 캐스팅도 모두 뒤집었어야 한다. 대체 그 20자평을 쓴 사람들은 뭘 생각하는 걸까. 실은 그 이전에 겨우 근간 두 권 보면서 이 잡지가 뭐냐 하는 의문이 드는 글들이 좀 있긴 했다. 그러나 난 영화도 몇 편 안 보고 그다지 관심도 없는 정말 이상한 인간(우리나라 요즘 상식으로 1년에 영화 다섯 편도 안 보는 사람은 없더라;)이니까 이 말은 신뢰할 수 없다.

- 《두기봉杜琪峰(두치펑, 어지간하면 외래어표기법 쓰고 싶은데 정말 누구도 이 사람과 그 사단은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부르지 않더라;;; 그만큼 인구회자가 덜 됐단 말이겠다.) 회고전》이 보고 싶다면 이유는 별것 없다. 오진우吳鎭宇(우전위)와 황추생黃秋生(황추성)이 보고 싶다. 그다지 홍콩영화를 보지 않은 것 같은데도 이 두 사람은 뇌리에 남는다. 전에 극장에서 개봉하지는 못하고 비디오로만 공개된 오진우의 영화(유청운劉靑雲, 즉 류칭윈도 같이 주연이었다.)에 맛이 갔던 적도 있다. 내가 찾아볼 영화는 아니었고, 번역하느라 봤다가 영화에 반했다고나; (그래서 영화 제목은 비밀임.)
하지만 내가 볼 수 있는 영화가 없다. 난 《영웅본색》을 다섯 번 보고서야 영화 줄거리를 이해했던 인간이다. 이러니 호러는커녕 어지간한 싸움박질 영화는 전혀 보지 못한다. 혹자는 내 이 반응을 보려고 같이 극장에 가려고 하지만, 정말 스스로 웬만큼 독한 마음을 먹지 않으면 못 간다. 이럴 때마다 한계를 느끼는데, 이번 두기봉 회고전도 내게 그런 아쉬움을 준다.

- 소설들을 읽고 싶다고 바랐는데, 읽고 싶은 소설들이 죄 무거워서 나갈 때는 가벼운(그러나 내용은 당연히 만만치 않은) 인문서를 집는 이 한계. -_-; 지난 《판타스틱》도 다 못 읽고 이달치도 오늘 겨우 샀다. 아니 난 정말 소설이 읽고 싶단 말이다. 심지어 이젠 책장 한쪽은 공짜로 받은 소설로도 넘친단 말이야. 공짜로 받은 소설이니 얼른 읽어서 사람들에게 풀어야 도리 아니겠어? NT노벨이라도 읽고 싶은데 요즘은 뭘 읽을지 모르겠다. 인기작은 또 왜 다 시리즈냐.

- 그래서 결국 쇼스타코비치를 듣다가 임현정을 시디플레이어에 넣다.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이 든 이 네 번째 앨범은 주제가 ‘사랑’이고 그렇게 목적한 바를 온전히 넣은 멋진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꺼내 들을 때마다 한 곡의 노래가 아닌 앨범에 반한다.
지나고 나도 사랑인 줄 몰랐던 어떤 것이 있다. ‘사랑’이라고 이름 붙인 순간 그것은 사랑이 된다. 그게 말의 힘이다. 그래서 ‘사랑’이라고 이름 붙인다.
2008/07/24 03:17 2008/07/24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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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namoth 2008/07/24 16:0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두기봉 회고전 기대되던걸요.. 작년에 익사일 봤다가 그 끝갈데없는 비장미? (그 태연하고, 단호하고, 진지한) 에 반했더랬죠. 하하하; 한번 섭렵을 해봐야될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비디오로만 공개된 오진우의 영화라..?^^;;

  2. 덧말제이 2008/08/05 23:5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영화 5편도 안/못 보는 이상한 인간, 여기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