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인지 아닌지 융이 말한 의미심장한 우연인지 뭔지는 몰라도 정신을 차려 보니 하드에 몇 개, 책상 위에 세 장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이하 《골트베르크》)이 놓여 있었다. 누가 나한테 이게 그렇게 좋으냐고 물으면 고개가 한쪽으로 제대로 꺾이는 음악이다. 아니 좋긴 한데 쇼팽의 《연습곡》과 《전주곡》이나 베토벤의 소나타들처럼 좋은 건 아니고, 들으면 듣지만 내가 음반을 사서 들을 것 같지는 않은 음악이란 건데, 어째서 이런 일이. Orz
기억하는 한에서 가장 오래된 《골트베르크》는 굴드의 1955년 연주인 것 같지만 그때의 느낌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나중에 1982년 녹음을 들으면서 1955년 녹음과 느낌이 굉장히 달라서 ‘우와 했던 기억’만 달랑 남아 있다. 그러니까 뭐가 어떻게 달라서 우와 했는지는 기억 안 나고, 내가 전에 우와 했다는 기억만;;;
KBS 1FM에서 한동안 열심히 바흐를 틀어 줬던 때가 있다. 그때 들었던 로잘린 투렉의 연주가 마음에 남아서 얼마 전에 구입했다. 그리고 그 전에 주목받고 있는 우리나라 연주자 임동혁의 앨범을 샀고, 엊그제 일하다가 헤롱메롱한 상태에서 《은혼》 23권을 사는 길에 시몬느 디너스타인의 앨범도 클릭. 하드에는 굴드의 1982년 녹음과 니콜라예바랑 또 몇몇 음원이 있다(뒤지기 귀찮으심;). 굴드는 산 줄 알았는데 심리적 저항감이 아직 남아 있는지 가지고 있지 않더라.
피아노를 좋아함에도 칠 줄은 전혀 몰라서 언제나 안타까워하지만 가끔은 이 무식함이 고마울 때도 있다. 예컨대 피아노 칠 줄 아는 사람이 폴리니 연주 들으면서 절망한다고 쓴 글을 읽을 때는 몰라서 다행이야 싶다. 그리고 어떤 음악을 듣고 난 즐거웠는데 음악을 할 줄 아는 이들이 악보의 표기나 작곡 의도에서 벗어난 곡이라고 말할 때도 그렇다. 옳지 못한 감상법이라는 걸 알지만 잠깐 이 상태로 즐기게 해 주세요 하는 마음이 든다. 또 이렇게 무식한 상태로 음반 감상을 적을 때도 부끄럽긴 하지만 뻔뻔한 기분도 든다. 뭐 어때.
처음에 임동혁의 《골트베르크》를 들었을 때, 놀랐다. 한동안 안 듣긴 했지만 다른 이들의 음반에서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끝까지 다 듣고 나서도 여전히 놀란 상태였다. 굴드 꽤 의식했다고 하더니 자기식으로 잘만 쳤잖아. 고민깨나 했겠으나 임동혁은 테크니션으로서의 자신도 잊지 않았고(그의 쇼팽 발라드 1번 좋아한다. 성질 그대로 드러나더라. 그리고 어딘지 폴리니 생각도 났음;), 20대의 피 끓는 청춘임을 잊지도 않았으며, 자기가 보여 주는 피아노의 세계가 굴드와 다르다는 점도 잊지 않았다.
불면증을 위한 연주곡으로 작곡된 곡이긴 하지만 솔직히 난 이 음악 듣고 자려면 대체 누구 연주를 들어야 하나 고민스럽더라. 곡이 너무 아름답잖아. 듣고 있으면 그냥 홀리는 거 아냐, 이거? 근데 어떻게 자?
임동혁의 《골트베르크》는 씩씩하고 열정적이고 시원하고 유려하면서 여전히 아름답다. 이 음반을 듣다가 굴드의 1982년 녹음을 들으니 같은 음악인가 싶고, 굴드와 임동혁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굴드의 연주를 듣자면 임동혁의 연주가 갖는 정열, 굴드의 연주가 드러내는 지성이 손에 잡힐 것 같다.
두 개를 돌려가면서 듣다가 투렉의 음반을 듣고 다시 기절. 이 카리스마라니!!! 일하면서 듣다가 손이 멎었다. 어느 정도 굴드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굴드가 지성적이라면 투렉이 좀 더 구조적이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느낌이다. 게다가 그 깊이. 사색적인 느낌이 강해서 새벽에 듣노라니 잠시 일을 손에 놓고 생각에 잠기게 됐다. DG에서 나온 음반도 사야겠다고 결심했다(이게 나중 녹음. 이런 사람은 녹음할 때마다 시간의 더께가 얹히면서 깊이든 넓이든 확장되는 법이라 꽂히면 다 사는 편이 좋더라.). 라디오에서 들을 때는 몰랐다. 그저 멋지구나 싶었는데 음반을 사서 다시 앉아 들으니 굉장하다.
그래서 참 민망한 게 시몬느 디너스타인. 아마 임동혁을 안 사고 이 언니를 먼저 사서 들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임동혁의 젊은이다운 패기 가득한 연주, 굴드의 지성적인 연주, 투렉의 카리스마 넘치는 사색적 연주를 듣고 나니 어디 둘 곳이 없다. 굳이 나누자면 임동혁 쪽에 넣어야 할 듯한데 좀 덜 팔랑거린다고 해야 하나. 그러기도 좀 뭐 한데; 아니 그래도 연주 자체는 좋다. 사실 음악을 몰라서 곡이 좋으면 난 그냥 다 좋은 거 같다. 이럴 때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시작의 아리아는 지루했어, 언니. 도돌이표까지 다 치는 것 같은 투렉의 연주도 4분 46초야. 언니 연주는 도돌이표 다 치는지 생각할 마음이 일지 않을 정도로 늘어지더라. 그러다 갑자기 확 힘 들어가는 1번 변주곡에서 얼마나 놀랐다구.
후텁지근한 이 여름날 낮에 임동혁을 듣는다. 조금만 깊어지면 더 좋은 연주할 것 같다, 이 사람. 날을 좀 세워야 할 때는 굴드, 언제든 집중해서 듣고 싶을 때는 투렉. 대충 노선은 정리됐는데…….
폴리니 오빠, 오빠 안 내 주시렵니까? 가끔 리사이틀 프로그램 보면 바흐는 있던데요. 여기 변방에 있는 팬 하나(아니 오기렌 님도 같이 있음)가 오빠의 바흐 연주를 꿈에서도 바라고 있습니다. 젊을 적 오빠의 바흐도 바랐지만 전 지금의 오빠 연주도 원해요. 꼭 《골트베르크》 아니라도. 어흑. 오빠한테 잘 어울릴 텐데. 《밤의 가스파르》는 탐내지 않을 테니(그딴 거 필요 없다!). ㅠ.ㅠ
기억하는 한에서 가장 오래된 《골트베르크》는 굴드의 1955년 연주인 것 같지만 그때의 느낌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나중에 1982년 녹음을 들으면서 1955년 녹음과 느낌이 굉장히 달라서 ‘우와 했던 기억’만 달랑 남아 있다. 그러니까 뭐가 어떻게 달라서 우와 했는지는 기억 안 나고, 내가 전에 우와 했다는 기억만;;;
KBS 1FM에서 한동안 열심히 바흐를 틀어 줬던 때가 있다. 그때 들었던 로잘린 투렉의 연주가 마음에 남아서 얼마 전에 구입했다. 그리고 그 전에 주목받고 있는 우리나라 연주자 임동혁의 앨범을 샀고, 엊그제 일하다가 헤롱메롱한 상태에서 《은혼》 23권을 사는 길에 시몬느 디너스타인의 앨범도 클릭. 하드에는 굴드의 1982년 녹음과 니콜라예바랑 또 몇몇 음원이 있다(뒤지기 귀찮으심;). 굴드는 산 줄 알았는데 심리적 저항감이 아직 남아 있는지 가지고 있지 않더라.
피아노를 좋아함에도 칠 줄은 전혀 몰라서 언제나 안타까워하지만 가끔은 이 무식함이 고마울 때도 있다. 예컨대 피아노 칠 줄 아는 사람이 폴리니 연주 들으면서 절망한다고 쓴 글을 읽을 때는 몰라서 다행이야 싶다. 그리고 어떤 음악을 듣고 난 즐거웠는데 음악을 할 줄 아는 이들이 악보의 표기나 작곡 의도에서 벗어난 곡이라고 말할 때도 그렇다. 옳지 못한 감상법이라는 걸 알지만 잠깐 이 상태로 즐기게 해 주세요 하는 마음이 든다. 또 이렇게 무식한 상태로 음반 감상을 적을 때도 부끄럽긴 하지만 뻔뻔한 기분도 든다. 뭐 어때.
처음에 임동혁의 《골트베르크》를 들었을 때, 놀랐다. 한동안 안 듣긴 했지만 다른 이들의 음반에서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끝까지 다 듣고 나서도 여전히 놀란 상태였다. 굴드 꽤 의식했다고 하더니 자기식으로 잘만 쳤잖아. 고민깨나 했겠으나 임동혁은 테크니션으로서의 자신도 잊지 않았고(그의 쇼팽 발라드 1번 좋아한다. 성질 그대로 드러나더라. 그리고 어딘지 폴리니 생각도 났음;), 20대의 피 끓는 청춘임을 잊지도 않았으며, 자기가 보여 주는 피아노의 세계가 굴드와 다르다는 점도 잊지 않았다.
불면증을 위한 연주곡으로 작곡된 곡이긴 하지만 솔직히 난 이 음악 듣고 자려면 대체 누구 연주를 들어야 하나 고민스럽더라. 곡이 너무 아름답잖아. 듣고 있으면 그냥 홀리는 거 아냐, 이거? 근데 어떻게 자?
임동혁의 《골트베르크》는 씩씩하고 열정적이고 시원하고 유려하면서 여전히 아름답다. 이 음반을 듣다가 굴드의 1982년 녹음을 들으니 같은 음악인가 싶고, 굴드와 임동혁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굴드의 연주를 듣자면 임동혁의 연주가 갖는 정열, 굴드의 연주가 드러내는 지성이 손에 잡힐 것 같다.
두 개를 돌려가면서 듣다가 투렉의 음반을 듣고 다시 기절. 이 카리스마라니!!! 일하면서 듣다가 손이 멎었다. 어느 정도 굴드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굴드가 지성적이라면 투렉이 좀 더 구조적이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느낌이다. 게다가 그 깊이. 사색적인 느낌이 강해서 새벽에 듣노라니 잠시 일을 손에 놓고 생각에 잠기게 됐다. DG에서 나온 음반도 사야겠다고 결심했다(이게 나중 녹음. 이런 사람은 녹음할 때마다 시간의 더께가 얹히면서 깊이든 넓이든 확장되는 법이라 꽂히면 다 사는 편이 좋더라.). 라디오에서 들을 때는 몰랐다. 그저 멋지구나 싶었는데 음반을 사서 다시 앉아 들으니 굉장하다.
그래서 참 민망한 게 시몬느 디너스타인. 아마 임동혁을 안 사고 이 언니를 먼저 사서 들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임동혁의 젊은이다운 패기 가득한 연주, 굴드의 지성적인 연주, 투렉의 카리스마 넘치는 사색적 연주를 듣고 나니 어디 둘 곳이 없다. 굳이 나누자면 임동혁 쪽에 넣어야 할 듯한데 좀 덜 팔랑거린다고 해야 하나. 그러기도 좀 뭐 한데; 아니 그래도 연주 자체는 좋다. 사실 음악을 몰라서 곡이 좋으면 난 그냥 다 좋은 거 같다. 이럴 때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시작의 아리아는 지루했어, 언니. 도돌이표까지 다 치는 것 같은 투렉의 연주도 4분 46초야. 언니 연주는 도돌이표 다 치는지 생각할 마음이 일지 않을 정도로 늘어지더라. 그러다 갑자기 확 힘 들어가는 1번 변주곡에서 얼마나 놀랐다구.
후텁지근한 이 여름날 낮에 임동혁을 듣는다. 조금만 깊어지면 더 좋은 연주할 것 같다, 이 사람. 날을 좀 세워야 할 때는 굴드, 언제든 집중해서 듣고 싶을 때는 투렉. 대충 노선은 정리됐는데…….
폴리니 오빠, 오빠 안 내 주시렵니까? 가끔 리사이틀 프로그램 보면 바흐는 있던데요. 여기 변방에 있는 팬 하나(아니 오기렌 님도 같이 있음)가 오빠의 바흐 연주를 꿈에서도 바라고 있습니다. 젊을 적 오빠의 바흐도 바랐지만 전 지금의 오빠 연주도 원해요. 꼭 《골트베르크》 아니라도. 어흑. 오빠한테 잘 어울릴 텐데. 《밤의 가스파르》는 탐내지 않을 테니(그딴 거 필요 없다!). ㅠ.ㅠ
2008/07/1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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