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내겐 종교가 없다. 그래도 굳이 하나 가져야 한다면 불교가 좋겠다고 생각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복 신앙이지만, 알다시피 불교는 혼자 도 닦아서 깨달음을 얻는 종교다. 뭐 도교도 비슷하긴 한데 개별성이 좀 약한 느낌이고, 불교보다 복잡해서 접근성도 떨어지고.

가와이 하야오는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사람이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이전에 이 책이 나온 동아시아에서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를 낸 바 있고, 거기 책날개에 보면 티베트에서 불교 공부를 한 사람이라고 나온다. 대중서의 꼴을 한 장정과 대담집이라는 말에 끌려 책을 집었다.

1.
책을 읽으면서 군데군데 당혹스러운 곳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뒤로 넘어갈수록 윤곽이 잡혀 왔지만, 내 일천한 지식을 불신하는 탓에 알라딘의 서평을 찾아보았다.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이 없었다. 내가 과민한 건가 자책하면서 마지막 장을 읽었다.

태장계와 금강계 만다라, 그리고 불교와 양자론을 시작으로 풀어가는 이야기 속에서 재미도 느꼈지만, 이 찜찜함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종교학을 공부하는 준식이에게 재미있는 얘기라고 했다가 군국주의와 맞물린 일본 선종의 이론에 대해 들었다. 이 찜찜함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예전 블로그에서 나카자와 신이치의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 중 《곰에서 왕으로》에 대한 독후감을 쓰면서, 그의 구조주의와 환원주의가 마음에 걸린다고 말한 적이 있다. 대칭항에 집착하는 구조주의적 접근은 일견 상쾌하고 보편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지나친 환원주의로 귀착되기도 한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환태평양 지역 일대의 신화를 하나로 묶어 버린다. 그때 난 거기서 왠지 일본의 대동아제국을 보는 듯하다고 썼다.

이 책 《불교가 좋다》는 세계의 종교를 논하고 일신교와 현대 문명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대안으로 불교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 책은 교묘하게 그 대안이 되는 불교가 일본의 불교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물론 인도의 석가 시대부터, 티베트의 밀교, 중국의 불교 등을 설명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남는 불교는 일본의 불교다.

두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동아제국의 꿈을 꾼다. 태장계 만다라와 같은 세계, 그 가운데 있는 대일여래와 같은 모습을 꿈꾸며, 동양도 서양도 없는 곳이 극동이고 거기에서 일신교를 만들어 내고 싶다는 생각을 웃으면서 말한다. 그것도 2차 세계대전 후 전범으로 기소된 오카와 슈메이의 원리를 이은 이즈쓰 도시히코(이 사람의 꿈이든 학설이든 읽은 바가 없으므로 그 자체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뛰어난 학자라고 들었고, 국내에 번역서도 있는 만큼 읽고 판단할 일이다.)의 이야기를 하면서.

일본 불교사의 인물들을 다룰 때도 부정적인 내용은 없다.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다만 글을 죽 읽다 보면 이 두 사람이 갖는 일본 불교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비판은 낯이 간지러운 정도로 끝난다. 마지막에 양계 만다라를 하나로 묶어 일본의 산악 불교와 융합한 구카이를 이야기할 때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가와이 하야오는 정치계에 있는 관료이자 심리학자답게 능구렁이처럼 ‘저는 잘 몰라요. 한 말씀 해 주시죠.’라면서 나카자와 신이치를 부추기고, 그러면 나카자와 신이치는 내숭 떠는 척하면서 신나게 온갖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리고 다시 가와이 하야오의 추임새. 만담 보는 기분이다. 두 사람의 의견은 원론에서 이미 같기 때문에 토론도 논박도 없다.

2.
나카자와 신이치를 걸고넘어지고 싶다. 난 그가 영리하지만 깊이가 없는 학자가 아닌가 생각해 왔다.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는 읽기 쉽지만 새롭지 않고, 신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다고 말하지만 대안을 보여 주지 못한다. 엘리아데가 그러면 이해할 수 있지만, 21세기의 학자가 호쾌하게 말하는 대안이 농경 사회로의 회귀 수준이라면 많이 아쉽다.

그는 이 책 《불교가 좋다》에서 자신이 잠재적 동성애자라고 밝힌다. 내가 보기에 그는 잠재적 동성애자가 아니라 그냥 동성애자다. 동성애자에게 편견은 없다. 그러나 그가 그걸 밝히기 전에 그 앞부분에 깔아 놓은 배경과 과정은 몹시 불쾌하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불교가 기독교와는 달리 여성성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며 여성적 원리를 향해 나아가려고 한다고 말하면서, 자연적인 여성을 부정하고 그것을 형이상학적으로 변모시킨 여성성을 받아들여 내적 원리로 삼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가와이 하야오의 입을 빌려, 석가 역시 생명을 가진 어머니(여성)를 부정하면서 강한 모성이나 원리로서의 여성은 동경했던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로 화제를 살짝 돌려, 자신이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이를 먹은 뒤 여성들을 사귀면서 환멸만 늘어 괴로웠음을 언급하고, 그래서 현실의 여성을 부정하고 여성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면서도 밖으로 표출되지는 않는 여성이라는 것과 대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종교에서 구현되는 여성성과 남성성은 형이상학적으로 변모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화된 어떤 원리. 그러나 그것이 생명을 가진 여성과 남성 개체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이런 식의 견강부회로 끌고 가 합리화시킨다. 그리고 그의 이런 논리 작용은 개인사에만 그치지 않고 책 전반에 걸쳐 발휘된다.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에서 느꼈던 불편함이 여기서 극대화되고 개인사까지 겹치면서 실체가 잡히는 느낌이었다.

3.
이 책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대중을 위한 책이 아니다. 난 동아시아출판사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장정으로 책을 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책은 참으로 곱고 제목도 단순하다. 편집도 읽기 좋게 잘돼 있다. 책 설명도 좋고, 심지어 알라딘 편집자 추천도 있다. 정말이지 알라딘 편집자 추천을 믿는 사람으로서, 난 내내 내 과민함을 의심하며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일본인을 위한 책이다. 이런 책이 나오면 안 된다는 건 아니지만, 뭐라고 해야 하나 장정과 설명에 속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그러나 한편 저 두 사람이 이 책을 우리나라 독자들도 읽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도 이렇게 얘기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일본의 문화와 불교를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 제법 도움이 되겠지만, 모르면 주석이 있어도 그다지 도움이 되는지 않는 것 같다. 일본 위키를 검색하면서 대충 맥락을 짚긴 했으나 어렵기는 매일반. 교고쿠 나쓰히코의 《광골의 꿈》에 나오는 불교인 진언 다치카와류가 나왔을 때 반가웠다거나, 《공작왕》 같은 일본 불교와 관련된 만화책들이 떠올랐다는 정도?

매트릭스, 양자론과 선종에 대한 부분은 관련서를 기회 될 때 읽게 되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하다. 과학과 종교가 학문적으로 증명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 역시 준식이가 해 준 말과 같은 의견을 갖지만, 외적인 부분에서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직접 책을 읽은 게 아니기 때문에 확실하게 방향을 찍기는 어렵겠다.

여전히 난 내가 이 책에 과민한 건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절대 독서 시간은 길지 않았으나, 읽는 시간 간격이 제법 길었다. 거기다 책을 덮고 고민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옮겨 적는 시간도 꽤 됐다. 이런 것들은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외길로 빠져 다른 길을 보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일본의 역사, 일본의 불교, 전후 일본의 문화와 흐름을 모르고, 불교와 심리학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 더 걱정스럽긴 하다. 하지만 내가 느낀 바가 그러니 정리 차원에서 적는다.
2008/07/02 03:14 2008/07/02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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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황준식 2008/07/05 12:1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양자론이건 일본 불교건 모두 문외한이지만 말야. 내 생각엔 불교와 양자론이 닮아있다는건 불교가 현대 과학에 맞는 종교라는걸 설명하기 보다는, 그저 석가모니가 세상 보는 눈이 밝은 사람이었다는걸 말해주는 정도가 아닐까? 기원전 인도 날란다 대학 지하에 양자 역학 연구소가 있었단 소리도 들은 바 없고 그 시절 무슨 양자 역학을 연구했겠어. 그저 저 언덕위 어제 본 보리수 나무가 오늘 본 보리수 나무랑 같은 거랑 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들에 나름대로 답을 낸게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것과 통한다는 것은 보리수 나무건 양자건 세상돌아가는거 거기서 거기라는 이야기겠지. 석가는 그에 대해 나름대로 그럴듯한 통찰력있는 답을 내놓은 것이고. 죽은 사람이 벌떡 일어나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보단 설득력도 강하고 말이다. 다만 그걸 가지고 '거봐 불교는 역시 훌륭해'하는 자랑정도는 들어주겠는데, 소위 일본불교의 신이라는 스즈끼가 "그러니까 천황께 충성하는것도 선불교고, 카미카제로 나서는 것도 선불교라"라고 우기는것은 정말 못봐주겠다 이거지. 문제는 세계 불교학계는 거의 일본 학자들 혹은 일본에서 공부한 서양 학자들이 주축이기 때문에 저런 군국주의와 선불교를 이론적으로 연결시켜준 다이세쯔 스즈끼 같은 학자들의 주장이 그대로 재생산 되고 있는게 안타깝지. 저런 이론의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는 책들도 나와야 균형이 맞을 텐데.

    • 之窈 2008/07/05 13:52  address  modify │ delete

      어, 그거. 세상 돌아가는 거 거기서 거기라는 걸 보여 줬는데 나중에 양자론 하는 사람들이 공부하다 막히니까 거기서 힌트를 얻어서 이론 성립에 도움을 받았다는 정도가 좋다는 말이었어, 나도. 그때 채팅할 때 이게 서로 전달이 안 됐나 보다. '증명'은 무리라고 봐. 현상학을 논하는 것도 아니고, 뭐. 그리고 저 사고 말인데, 저거 불교만 한 것도 아니지 않냐? 찾으면 더 나올 듯. 사람 생각이야말로 거기서 거기구먼.

      그런데 스즈키의 학설에 반박하는 책도 꽤 나왔다고 하지 않았어? 나카자와 신이치 너무 얄팍해서 지호더러 글 쓰라고 졸랐는데 씨도 안 먹히더라. 나쁜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