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활짝 피고 라일락도 만개를 기다리던 어느 날 밤새 비가 내렸다. 그날 저녁 밖에 나와 보니 바닥이 온통 꽃잎으로 가득했다. 봄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는데 바닥에 진 꽃만 보자니 너무나 아쉬웠고, 이렇게 비가 몇 번 오고 나면 푸른 여름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초조해졌다. 봄비에 날씨가 따뜻해지고, 가을비에 추워진다고, 점점 기온이 올라 이제는 여름이다.

보통 봄을 신록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그건 일단 꽃이 진 다음 일이다. 봄을 알리는 건 개나리, 진달래, 그리고 벚꽃이 먼저다. 꽃이 지면 잎이 나는 봄꽃들.
이럴 때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반사적으로 맹호연孟浩然의 유명한 시 〈봄날 새벽春曉〉이 떠오른다.

春眠不覺曉, 새벽이 오는 줄도 모르고 봄잠을 자는데
處處聞啼鳥. 곳곳에서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夜來風雨聲, 밤 내내 비바람 소리가 들렸으니
花落知多少. 꽃이 얼마나 떨어졌을까.

좋은 시는 다시 봐도 좋다. 《당시삼백수》에서 이 시를 다시 읽으면서 ‘아, 여전히 좋구나.’ 감탄한다(그리고 역시 오언절구가 최고구나 좋아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 《당시삼백수》와 나란히 꽂아 둔 《송사삼백수宋詞三百首》를 휙휙 넘기다가 맨 끝에서 이청조李淸照의 사 한 수를 발견했다.

昨夜雨疏風驟 어젯밤 성긴 비 내리고 세찬 바람 불어,
濃睡不消殘酒 깊은 잠도 남은 술기운 없애지 못해
試問捲簾人 발 걷는 아이에게 물어보는데
却道海棠依舊 해당화가 여전하다고 말한다.
知否知否 모르니? 모르니?
應是綠肥紅瘦 분명 초록은 살찌고 붉은빛은 시들었을 텐데.

〈여몽령如夢令〉은 앞에서 맹호연이 읊은 〈봄날 새벽〉과 같은 정서를 품고 있다. 봄날에 피는 해당화가 비바람에 지는 걸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나 밤새 내린 비바람 소리에 얼마나 많은 꽃이 졌을까 걱정하는 마음은 같다. 내가 읽은 당나라 시인들의 시에는 언제나 시간의 흐름을 몸으로 느끼고 아쉬워하며, 그래서 이때를 놓칠쏘냐 좋은 시절을 즐기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 있었다.

달리 “급시행락及時行樂”이 아니다. 이 ‘급시행락’은 때가 오면 (놓치지 말고) 즐긴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백은 여러 시에서 이런 분위기를 풍겼고, 이상은도 꽃놀이에서 꽃보다 술에 먼저 취했다가 저녁에 깬 뒤 아쉬운 마음에 촛불을 밝혀 남은 꽃을 본다고 노래했다. 뭐 유학자들은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으니 때 놓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란 시를 지었지만, 그런 건 재미없다.

똑똑하고 활달한 이청조는 갑갑한 송나라 시절에도 남편과 참 잘 놀았고, 함께 술과 차를 즐기며 즐겁게 살았다. 그래서 남편이 죽은 뒤의 삶과 사가 더욱 대비되는지도 모르겠다. 이 〈여몽령〉은 언제 지은 사일까 머리를 굴려 보지만, 뭐 어느 때든 그녀가 시인으로서 갖는 계절 감각은 여전하겠지.

맹호연의 시와 이청조의 사를 보면서 문득 이게 남녀의 차이인가 생각한다. 맹호연의 이 시는 읽고 나면 아쉬움과 함께 어딘지 담담한 느낌이 든다. 차분해지는 기분이랄까. 반면 이청조의 사는 왠지 아기자기한 느낌이 드는데 아마도 저 ‘모르니? 모르니?’라고 한 부분과 그 뒷부분 때문일까 짐작한다. ‘아이 참, 붉은빛이 시들어가는데 그걸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듯한.

눈을 돌리면 온통 초록이다. 본격적인 여름이 되면 날카로운 그림자와 함께 선명하고도 채도 높은 초록들이 세상을 덮을 것이다. ‘급시행락’이라는데 이백의 말처럼 술잔을 멈추지 않을 재간은 없으니 옆 산으로 산책이라도 나가 봐야겠다.
2008/05/31 00:22 2008/05/31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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