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가서 시간이 애매하게 남을 때를 위해 책을 골랐다가 한 권을 잃어버리고, 급한 김에 집었던 책은 결국 100쪽가량 읽은 뒤 포기했다(악보도 못 보는 인간에게는 무리였다. 석, 화이팅!). 두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깨달은 사실은 그 시간에 읽기로는 이론도 서사도 불가능하다는 것. 심심하면 읽으리라 생각했던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를 골랐다. 시 한 수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엿장수 마음대로라, 어려운 시는 어려운 대로 쉬운 시는 쉬운 대로 자투리 시간에 읽을 만할 듯했다.
역시 오언절구五言絶句가 짱이다. 《당시삼백수》 속의 짧은 시들은 당나라 시기에 시가 얼마나 일상화되었는지 느끼게 해 준다. 일상 대화나 혼잣말 수준의 시도 종종 보인다. 쉬운 말로 지금 느끼는 감정을 엮어 시를 만든다. 당나라에 시가 그렇게나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래 조대로 내려가면 시는 점점 어려워진다. 여튼 오언절구의 담백함을 보면서 나 같은 애도 읽을 수 있는 이 쉬움에 감동한다.
누구나 들어봤을 이백李白의 〈밤의 그리움夜思〉을 보면 어려운 한자가 단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그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자려고 누웠는데 달빛이 굉장히 밝아서 서리가 내려 이렇게 밝은가 생각하고 밖으로 나온다. 그러나 서리는 아직 내리지 않았고 그저 달빛만 휘영청 밝다. 아마 보름달일 게고, 아마 추석 즈음일 게다. 중국인의 문화에서 보름달은 가족이 모이는 화목함 혹은 만남을 상징한다(전에 인용한 소식蘇軾의 사 〈수조가두水調歌頭〉 일부에서도 나타난다.). 추석에 먹는 웨빙月餠 역시 보름달과 온 가족이 모인 둥근 식탁을 의미한다. 그렇게 나가 둥근 달을 보니 고향을 떠나 있는 자신의 처지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속에 솟아올라 저절로 고개가 떨어진다.
그 마음이 저렇게 쉬운 한자들 속에 아련하게 담겨 있다.
당시唐詩의 양대 산맥인 두보杜甫와 이백의 시를 보면, 이백이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백은 거의 보통 사람들의 노래를 담은 《시경詩經》 수준의 시를 짓는다. 쉽지만 아름답고 장대하고 하고 싶은 말은 다하는. 두보는 전고典故도 알아야 하지만 일단 쓰는 한자 자체가 누구에게나 쉽지도 않다. 물론 읽을수록 그 시를 짓기 위해 했을 고민도 알겠고, 시 자체에서 깊은 맛도 느껴지지만 나처럼 가끔 시집을 팔락거리며 눈 닿는 데의 시나 좀 읽는 사람으로선 어렵기 그지없다.
그래서 두보의 시는 공부하는 사람의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시대로 말하자면 선비의 시. 일반 백성들이 좋아라 노래할 시는 아닌 듯하다. 《당시삼백수》의 오언절구 부분에서 이백의 〈밤의 그리움〉을 넘기면 두보의 시가 나오는데 하필 〈팔진도八陣圖〉다. 내가 공명 팬이긴 하지만 이백의 저 시를 읽고 〈팔진도〉라니 너무 재미없다. 두보는 정말 유가儒家를 실천한 선비다. 그 가난 속에서 가족들을 꼭꼭 챙겨 떠돌면서 힘들게 살고(당연하게도 이백은 그런 인간 아니다.), 어쩌다 작은 벼슬 하나 얻으면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 고픈 속에 고기 먹고 그게 잘못돼 죽었다. (그러나 내 기억은 불확실함.)
그래도 미안. 두보 시는 따로 공부를 해야 하고, 그의 진지함과 인간미 넘치는 소심함이 아직은 부담스럽다. 언젠가 당나라를 좀 더 공부하면, 그리고 나이를 좀 더 먹으면 무릎 꿇고 앉아 두보 시를 읽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차라리 어렵기로는 두보에 뒤지지 않아도 절절한 사랑 노래와 술타령을 하는 이상은李商隱에게 도전하지 싶다. 아니면 미로 같은 에로 시인 이하李賀나.
원래는 여름 노래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운동하면서 내내 〈밤의 그리움〉을 중국어로 중얼거렸더니(중국어로 읊으면 시가 더 맛깔지다. 원래 중국 시라서 그렇겠지.) 옆길로 새게 됐다. 그건 자고 나서.
역시 오언절구五言絶句가 짱이다. 《당시삼백수》 속의 짧은 시들은 당나라 시기에 시가 얼마나 일상화되었는지 느끼게 해 준다. 일상 대화나 혼잣말 수준의 시도 종종 보인다. 쉬운 말로 지금 느끼는 감정을 엮어 시를 만든다. 당나라에 시가 그렇게나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래 조대로 내려가면 시는 점점 어려워진다. 여튼 오언절구의 담백함을 보면서 나 같은 애도 읽을 수 있는 이 쉬움에 감동한다.
누구나 들어봤을 이백李白의 〈밤의 그리움夜思〉을 보면 어려운 한자가 단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그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床前明月光, 疑是地上霜. 침상 앞 밝은 달빛에 서리가 내렸나 했다.
擧頭望明月, 低頭思故鄕. 고개 들어 밝은 달을 보고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한다.
자려고 누웠는데 달빛이 굉장히 밝아서 서리가 내려 이렇게 밝은가 생각하고 밖으로 나온다. 그러나 서리는 아직 내리지 않았고 그저 달빛만 휘영청 밝다. 아마 보름달일 게고, 아마 추석 즈음일 게다. 중국인의 문화에서 보름달은 가족이 모이는 화목함 혹은 만남을 상징한다(전에 인용한 소식蘇軾의 사 〈수조가두水調歌頭〉 일부에서도 나타난다.). 추석에 먹는 웨빙月餠 역시 보름달과 온 가족이 모인 둥근 식탁을 의미한다. 그렇게 나가 둥근 달을 보니 고향을 떠나 있는 자신의 처지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속에 솟아올라 저절로 고개가 떨어진다.
그 마음이 저렇게 쉬운 한자들 속에 아련하게 담겨 있다.
당시唐詩의 양대 산맥인 두보杜甫와 이백의 시를 보면, 이백이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백은 거의 보통 사람들의 노래를 담은 《시경詩經》 수준의 시를 짓는다. 쉽지만 아름답고 장대하고 하고 싶은 말은 다하는. 두보는 전고典故도 알아야 하지만 일단 쓰는 한자 자체가 누구에게나 쉽지도 않다. 물론 읽을수록 그 시를 짓기 위해 했을 고민도 알겠고, 시 자체에서 깊은 맛도 느껴지지만 나처럼 가끔 시집을 팔락거리며 눈 닿는 데의 시나 좀 읽는 사람으로선 어렵기 그지없다.
그래서 두보의 시는 공부하는 사람의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시대로 말하자면 선비의 시. 일반 백성들이 좋아라 노래할 시는 아닌 듯하다. 《당시삼백수》의 오언절구 부분에서 이백의 〈밤의 그리움〉을 넘기면 두보의 시가 나오는데 하필 〈팔진도八陣圖〉다. 내가 공명 팬이긴 하지만 이백의 저 시를 읽고 〈팔진도〉라니 너무 재미없다. 두보는 정말 유가儒家를 실천한 선비다. 그 가난 속에서 가족들을 꼭꼭 챙겨 떠돌면서 힘들게 살고(당연하게도 이백은 그런 인간 아니다.), 어쩌다 작은 벼슬 하나 얻으면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 고픈 속에 고기 먹고 그게 잘못돼 죽었다. (그러나 내 기억은 불확실함.)
그래도 미안. 두보 시는 따로 공부를 해야 하고, 그의 진지함과 인간미 넘치는 소심함이 아직은 부담스럽다. 언젠가 당나라를 좀 더 공부하면, 그리고 나이를 좀 더 먹으면 무릎 꿇고 앉아 두보 시를 읽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차라리 어렵기로는 두보에 뒤지지 않아도 절절한 사랑 노래와 술타령을 하는 이상은李商隱에게 도전하지 싶다. 아니면 미로 같은 에로 시인 이하李賀나.
원래는 여름 노래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운동하면서 내내 〈밤의 그리움〉을 중국어로 중얼거렸더니(중국어로 읊으면 시가 더 맛깔지다. 원래 중국 시라서 그렇겠지.) 옆길로 새게 됐다. 그건 자고 나서.
2008/05/30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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