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파트에서 십 년을 살았다. 워낙에 이사를 잘 다니지 않아 한번 자리 잡으면 십 년이다. 십 년 살림을 정리하는 일은 참 쉽지 않다. 그리고 이 십 년은 우리 가족의 첫 아파트 생활이었다. 단독 주택의 거대한 살림을 아파트로 이고지고 가져오고 다시 십 년을 또 쌓았다. 이게 다 소용없다는 사실을 이삿짐 정리로 깨닫는다.
어머니는 여기저기 동동거리며 걷어내기 바쁘시다. 긴장이 되어서 피곤하실 텐데도 많이 못 주무신다. 쌓아 놓기 좋아하기로야 우리 집에서는 역시 어머니셨는데 이번에 득도를 하셨는지 아낌없이 버리시고 홀가분해하신다. 의외의 발견은 아버지. 늘 내게 책 좀 버려라, 네 방이 사람 사는 곳이냐 쓴소리를 하시던 분이 어머니의 버리라는 말씀에 내내 못마땅한 표정이시다. 아무리 봐도 소용이 닿지 않는 물건인데도 물건 하나하나에 어찌나 그리 사연을 담고 계신지 쥐었다 놓았다 고민이 많으시다. 머리로는 버려야지 하면서도 마음이 안 따라 주시는 듯. 이번엔 좀 가뿐한 살림을 하고 싶다시는 어머니와 그냥 이대로 짐 다 이고 가면 안 될까 하시는 아버지의 신경전이 이사 뒤에도 제법 이어지지 싶다.
살림이 거의 없는 동생은 단 오후 반나절 동안에 모든 걸 정리했다. 이제 일을 넘기고 뒤늦게 정리 대열에 합류한 내가 있다. 그제는 좁은 방 한가운데에 산처럼 책을 쌓았다. 산길 이곳저곳에 있는 산행객의 돌무더기 탑 수준이다. 혼자 낑낑거리며 정리하고 있는데 오후 늦게 들어온 동생이 말없이 옆에 앉아 책을 묶어 내놓는다. 이 상태가 11일 밤까지 이어졌다. (이 와중에 동생네가 와서 사흘을 있다 갔다.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지금은 전자메일로 편지를 주고받고, 그 정도도 지메일이 '대화'라고 표현하듯 수다만큼 쉽고 간편해졌지만, 정말 이 주일 걸려 편지가 미국으로 날아가고 삐삐로 오는 소식을 듣기 위해 공중전화기로 달려가야 했던 시절이 있긴 있었다. 오래도록 방치해 둔 서랍들 속에는 삐삐와 친구들의 편지와 사진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었다. 남김없이 버리리라 생각했던 마음에도 책을 일단 들추면 모든 결심이 무너지듯, 사진도 편지도 그냥 버릴까 하는 마음은 글 한 줄 다시 읽으면서 사라졌다.
이름만 봐도 가슴이 아릿한 사람들과 아무리 읽고 읽어도 대체 누구인지 짐작도 안 되는 사람들, 간단한 메모로 남은 나의 일상 속에서 하루 종일 시간과 공간을 방황하며 현기증을 느꼈다. 부족한 용돈으로 어떻게든 반짝이는 대상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손에 넣고자 약은 짓을 했던 기록, 그 기록을 증명하는 상자 한 구석에 켜켜이 쌓인 카세트테이프 음반의 재킷과 수첩 속의 구입 예정 도서 목록. 한때 이유도 모르고 열광했던 영화와 관람 기록도 있고, 전혀 기억나지 않는 아나이스 닌에 대한 성토 가득한 감상이나 사람을 좋아해서 앓는 열병의 짧지만 꾸준한 기록도 있었다.
읽으면서, 이렇게 지금의 나 자신이 있기까지 지나 온 사람과 시간과 장소와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인연을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게 합리성이 부여되는 건 아니지만, 감사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어쨌든 닥치면 마주하는 걸까. 그전부터 서랍과 상자를 정리하겠다고 하면서도 서랍을 열어서 한번 보고는 다시 닫고는 했다. 일종의 판단 회피랄까. 정리를 하려면 판단을 해야 한다. 남기거나 버리거나.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이번 이사에서는 지난번과는 달리 그냥 안고 가게 되지 않는다. 귀찮아도 싫어도 정리를 해야겠다 싶었다. 뭐 그리고 이사할 날이 코앞에 닥치니 밀린 일 해치우듯 투덕투덕 해내고 있다.
아직도 정리해야 할 일은 남았고, 판단을 유보한 것들도 많다. 하지만 너무나 완벽한 정리는 애당초 내게 불가능한 일이고, 이 정리로 느낀 바는 간단히 사라지지 않으리라 짐작한다. 이참에 머릿속도 좀 정돈하고 싶은데 되려나 모르겠다. 요즘은 주변도 도와주지 않고.
어머니는 여기저기 동동거리며 걷어내기 바쁘시다. 긴장이 되어서 피곤하실 텐데도 많이 못 주무신다. 쌓아 놓기 좋아하기로야 우리 집에서는 역시 어머니셨는데 이번에 득도를 하셨는지 아낌없이 버리시고 홀가분해하신다. 의외의 발견은 아버지. 늘 내게 책 좀 버려라, 네 방이 사람 사는 곳이냐 쓴소리를 하시던 분이 어머니의 버리라는 말씀에 내내 못마땅한 표정이시다. 아무리 봐도 소용이 닿지 않는 물건인데도 물건 하나하나에 어찌나 그리 사연을 담고 계신지 쥐었다 놓았다 고민이 많으시다. 머리로는 버려야지 하면서도 마음이 안 따라 주시는 듯. 이번엔 좀 가뿐한 살림을 하고 싶다시는 어머니와 그냥 이대로 짐 다 이고 가면 안 될까 하시는 아버지의 신경전이 이사 뒤에도 제법 이어지지 싶다.
살림이 거의 없는 동생은 단 오후 반나절 동안에 모든 걸 정리했다. 이제 일을 넘기고 뒤늦게 정리 대열에 합류한 내가 있다. 그제는 좁은 방 한가운데에 산처럼 책을 쌓았다. 산길 이곳저곳에 있는 산행객의 돌무더기 탑 수준이다. 혼자 낑낑거리며 정리하고 있는데 오후 늦게 들어온 동생이 말없이 옆에 앉아 책을 묶어 내놓는다. 이 상태가 11일 밤까지 이어졌다. (이 와중에 동생네가 와서 사흘을 있다 갔다.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지금은 전자메일로 편지를 주고받고, 그 정도도 지메일이 '대화'라고 표현하듯 수다만큼 쉽고 간편해졌지만, 정말 이 주일 걸려 편지가 미국으로 날아가고 삐삐로 오는 소식을 듣기 위해 공중전화기로 달려가야 했던 시절이 있긴 있었다. 오래도록 방치해 둔 서랍들 속에는 삐삐와 친구들의 편지와 사진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었다. 남김없이 버리리라 생각했던 마음에도 책을 일단 들추면 모든 결심이 무너지듯, 사진도 편지도 그냥 버릴까 하는 마음은 글 한 줄 다시 읽으면서 사라졌다.
이름만 봐도 가슴이 아릿한 사람들과 아무리 읽고 읽어도 대체 누구인지 짐작도 안 되는 사람들, 간단한 메모로 남은 나의 일상 속에서 하루 종일 시간과 공간을 방황하며 현기증을 느꼈다. 부족한 용돈으로 어떻게든 반짝이는 대상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손에 넣고자 약은 짓을 했던 기록, 그 기록을 증명하는 상자 한 구석에 켜켜이 쌓인 카세트테이프 음반의 재킷과 수첩 속의 구입 예정 도서 목록. 한때 이유도 모르고 열광했던 영화와 관람 기록도 있고, 전혀 기억나지 않는 아나이스 닌에 대한 성토 가득한 감상이나 사람을 좋아해서 앓는 열병의 짧지만 꾸준한 기록도 있었다.
읽으면서, 이렇게 지금의 나 자신이 있기까지 지나 온 사람과 시간과 장소와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인연을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게 합리성이 부여되는 건 아니지만, 감사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어쨌든 닥치면 마주하는 걸까. 그전부터 서랍과 상자를 정리하겠다고 하면서도 서랍을 열어서 한번 보고는 다시 닫고는 했다. 일종의 판단 회피랄까. 정리를 하려면 판단을 해야 한다. 남기거나 버리거나.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이번 이사에서는 지난번과는 달리 그냥 안고 가게 되지 않는다. 귀찮아도 싫어도 정리를 해야겠다 싶었다. 뭐 그리고 이사할 날이 코앞에 닥치니 밀린 일 해치우듯 투덕투덕 해내고 있다.
아직도 정리해야 할 일은 남았고, 판단을 유보한 것들도 많다. 하지만 너무나 완벽한 정리는 애당초 내게 불가능한 일이고, 이 정리로 느낀 바는 간단히 사라지지 않으리라 짐작한다. 이참에 머릿속도 좀 정돈하고 싶은데 되려나 모르겠다. 요즘은 주변도 도와주지 않고.
2008/05/12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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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한국 떠나기 1주 전에 혼자 부산에 다녀왔어요. 동생네로 이사가던 날이었죠. 왜냐하면 그간 쌓여온 편지를 다 읽고 싶다는 생각에, 그때까지 이래저래 밀려서 떠밀리듯 시간을 쓴 죄책감에 그날 내가 그렇게나 좋아하던 그 집에게(내가 얼마나 그 집을 좋아했는지 아나요? ^^;) 인사를 하고 8시 고속열차를 탔어요. 3시간이 조금 안되는 기차안에서 그 편지를 읽지 못했어요. 던킨 커피와 17차를 눈물과 함께 꾸역거리고 마셨어도 너무 많이 울어서였을까 화장실 한번을 안가더군요. 그렇게 정리라는 것을 했어요. 나처럼 버리기를 즐기는 사람도 차마 손에서 떼지 못해서 마지막날까지 그렇게 방치 그리고 회피를 했던 일이 편지와 기록을 정리하는 거더라구요. 정말 놀랬던 것은 아이스크림 나무 막대기에 받았던 편지와 필름에 흰 펜으로 써진 것이더라구요. 원래는 다 버리고 오려고 했는데 못그랬어요. 그게 안되더라구요. 그 사람을 그 마음을 어떻게 쓰레기통으로 보내나 싶어서요. 싸들고 여기까지 왔죠. 나도 그런데 언니는 어떨까 싶네요. 언니네 집에 놀러갈때 주전부리 사가던 그 슈퍼랑 매일 첫번째 신호등에서 내렸던 것을 생각해봐요.
새집에서 또 새롭게 시작하면 되죠. 너무 매달리지 말아요.
참 이사한 날 저녁에 부모님이랑 언니 꼭! 쌍화탕 마시는 것 잊지 말구요.
쌓인 편지를 다 읽거나 하지는 않지만, 편지는 그 어떤 선물보다 마음의 정수이고 이제는 거의 늘지 않는 것이라 상자 하나에 담아 두었다. 사진도 대충. 모든 선물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버린 선물도 있겠지. 난 받을 때 마음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편이야.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도 없지만.
(근데 슈퍼와 신호등은 뭐냐;)
매달리긴. 그냥 감회야. 이 정도 궁상도 못 떨면 어떻게 사냐.
쌍화탕 왜 마셔야 해?
마신거랑 안마신거 엄청난 차이를 느낄꺼에요. 날이 푹해졌어도 신경 바짝 쓰는 날은 다음날 한기 들잖아요. 안쓰던 근육들도 쓰게 되고 적응 안되는 집에서 첫날밤을 보내줘야 하고 몸에게 보험 들라는 말이지요. 이런 경우에 내가 시키는 데로 해서 손해본 적 있었수?
그리고 궁상떤다고 뭐라고 하는거 아니었어요. 그냥 나도 그랬다구요. -_-;;
오, 그러냐? 역시 그렇군.
그렇다고 내가 언제 이런 경우에 네 충고 무시하는 거 봤냐? 그치만 꼬박꼬박 왜 그런지 묻는 게 내 병이잖아. 알면서. 오늘 내내 짐 쌌어. 아, 편지는 큰 마음 먹고 버려야지 했는데, 도저히 안 돼서 옷상자로 쓰는 큰 상자에 다 쏟아 붓고 묶어 놨다. 세상에 여기저기서 계속 나오더라. 내가 졌지 뭐. -_-;
남은 책들이 책장에 모두 오순도순 들어갈 수 있길 빌어다오. 내 작은 소원인데 어째 오늘 어림해 보니 어림이 안 나온다. ㅠ.ㅠ
이사 준비에 여념이 없으시군요. 저도 결혼 후 이사를 무려 일곱 번 하면서 많이 버리기도 버렸지만 편지는 못 버리겠데요. 뭐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요. 그거 읽어보는 게 또 얼마나 재밌던지...
쌍화탕이고 뭐고 많이많이 마셔서 기운 보충해두세요. 이사 그게 얼마나 뼈빠지는 일인데요. 저는 요즘 커피는 하루 한 잔으로 줄이고 대신 한차를 두세 잔 매일 마시고 있어요. '비염에는 녹차가 안 좋다고, 대추차 같은 거 많이 마시라'고 한의사가 그래서.
그리고 요즘 얼굴에 각질이 마구마구 생기고 가려워 죽겠어서, 진작에 포기한 화장품을 좀 알아볼까 하고 지식인을 뒤지다가 어떤 글을 발견하고 정말이지 미친 듯이 웃다가 지요님 생각나서 왔어요. 20대 초반이라는 남자애가 올린 글인데 여자친구 엄마가 마흔한 살인데 40대에 맞는 기초화장품 선물을 뭘로 하면 좋겠냐는 질문이었어요. 내가 내년에 마흔하나인데! 푸하핫. 와, 정말 늙었다는 게 실감나요~ 이번에 만나게 되면 조언 좀 주세요. 이런저런 샘플 따위로 스킨과 로션, 에센스만 바르며 버티고 있는데 이제 아무래도 안 되는 나이가 왔나 봐요. 클클....
이사 후기는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흑.
화장품이야 뭐... 저도 비슷해요. 여전히 기조 하나만 고수 중인데, 그나마 요즘은 게을러서 그것도 아슬아슬해요. 몇 가지 말씀은 드릴 수 있겠지만 도움이 될지는... ^^;;;
쌍화탕 마실 생각보다 일단 술부터 줄여라.
풋, 질투하는 거지?
보내주신 책 정말 잘 받았습니다.
많이는 아니지만 슬슬 읽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을 다시 한 번 가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는데, 말처럼 쉬이 될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
에고고.. 오랫만에 몸이 많이 아팠습니다.
기침은 여전히 심해서 수업에 지장을 줄 정도네요. ^^
환절기에 감기 무지하게 조심하십시오. ^^
받으셨으면 됐습니다. 떴나 싶어 걱정했을 뿐이에요.
앗 저도 어제 정리에 대한 포스팅 썼는데, 지요님 찌찌뽕!!!=_=
전 지요님이 책 같은 것 미련 없이 버리시는 모습 보면 부러워요. 정리 잘하실 것 같아요-_ㅜ
간만의 이사, 무사히 잘 마치시길 바랄게용.
미련 없이요? 미련 없이요? 미련 없이요?
어찌됐든 버리긴 했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구구절절한데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몇날며칠 징징대는 걸 보시고도...;
결국 편지도 못 버리고, 모았던 엽서도 못 버리고 아직도 방은 난장판입니다. 아우. ㅠ.ㅠ
한만화에서 본것같은데 뭐였더라 책상사물자가증식의 법칙이었나, 여튼 그런 상황이니 저도 대청소를 해야할듯 싶네요. 저도 이런저런 오래된 기록? 들을 갈무리할라치면, 그 시절을 잠시나마 떠올리게 되더군요. 굳이 남겨둬야할 만큼의 감정의 여운이 남은것은 아닌데 쉬이 버리진 못하긴 매한가지고... 그렇게 잠시 돌아갔다가 봉인을 해두는 반복인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