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게을러서 그놈의 베이징 여행, 오래도 우려먹는다;;; 일 한가할 때 얼렁 올리고 끝내야 할 텐데)

왕푸징 역에서 출발, 둥즈먼東直門 역에서 내리니 천지간 구분도 안 갔다. 날은 덥고 버스 노선도 모르는데 이미 그쯤에서는 지쳐서 맛이 가 있었으므로 눈앞에서 살랑거리는 택시를 집어탔다. 역시 택시는 시원했다. 이제 택시도 1.6위안짜리와 2위안짜리로 정리가 된다더니, 정말 1.2위안짜리 택시는 보이지 않았다. 차들도 좋아졌고. 올림픽은 여러 모로 힘이 세다. 앉아서 생각해 보니 택시비는 정말 거의 오르지 않았다. 저 2위안 택시는 10년 전에도 있었다. 그때는 비싸서 덜덜 떨었는데, 지금의 폭력적인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꽤나 낮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도서전은 참…… 재미없었다. 나라의 힘으로 날로 먹으려는 건가 하는 불쾌함이 들었다. 중심이 되는 전시장 한 곳만 전체 층을 다 둘러보았는데, 첫날의 그 인파(엄청 많았다는 소문)는 어디로 간 건지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았고, 출판 관계자라고 나온 사람도 전시회를 보러 온 사람들도 활기가 없었다. 장삿속으로 망가졌다고 하는(난 사실 타이완의 입지가 좁아져서라고 보지만) 타이베이국제도서전 쪽이 훨씬 좋았다. 비교하면 타이베이가 화내려나. 타이완은 이미 선진국인데. 생수 마실 곳조차 확보가 안 되는 상황에서 각 출판사 부스에만 정수기가 있었는데, 그나마 책을 사는 사람한테만 물을 주는 듯했다(아니면 지들만 먹는 물이거나. 둘 다 마음에 안 들긴 매한가지.).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타이베이도서전 생각만 하고 성큼성큼 들어가 물을 마시려고 하니 그때까지 수다 떨면서 놀던 직원 하나가 와서 네가 뭔데 마시냐고 한다. 이거 그냥 주는 거 아냐? 하고 당황해서 물었더니 물만 마시라고 작은 종이컵을 준다. 외국인이라서 봐준 느낌이었다.

책도 별로 없고, 책 팔 생각도 별로 없고, 소개할 마음도 없고. 하여튼 몹시 재미없었다. 맨 위층에서 구글이 행사를 했다. 준비 중인지 뒤끝인지는 모르겠는데 컴퓨터 몇 대를 놓고 일반인이 쓸 수 있도록 해 두어서, 각종 음악을 틀면서 아무 짓도 하지 않는 주제에 컴퓨터에서 떠날 줄을 모르는 애녀석의 뒤통수를 한참 째려보고 나서야 메일 체크를 할 수 있었다. 그 줄에 서 있던 이들 모두 그 녀석을 노려보았다. 어디나 버르장머리 없는 애들은 있게 마련이지. 그나저나 구글, 애쓴다.

허망하게 도서전을 나와 그냥 돌아가기가 눈물 나게 억울해서 바로 옆에 있는 까르푸에 들렀다. 예상보다 훨씬 건조하고 공기가 나쁜 데다가 이번 여행을 위해 친구가 선물한 자외선차단제가 극단으로 당겨서 아이크림이라도 하나 살까 하고(백탁의 황제에 건조한 공기 속에서는 당김이 더 심해서 웃기도 힘들 정도였다.). 사람도 물건도 많았는데 화장품 코너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뭘 볼 수가 없었다. 결국 치약만 작은 걸로 하나 사서 나왔다. 아, 이대로 숙소에 가긴 억울하다. 여행서를 뒤적였다. 가까운 곳에 ‘궁티’(궁런티위관, 공인체육관工人體育館, 주변에 놀 곳이 많다)가 있었다. 택시.

카페 "타이디 다이쓰泰笛黛斯Tasty Taste"는 《베스트 베이징》에 소개글을 보면서부터 꼭 가야지 했던 곳이다. 케이크라잖아, 케이크!!! UBC커피는 정말 캐사기였다. 이 카페의 커피가 훨씬 맛있었다. 여행을 기록한 수첩을 보니 커피와 케이크 두 조각이 55위안이다. 케이크는 꽤 달았지만 진해서 좋았다. 물은 레몬이 든 생수여서 피곤한 내게 상큼함을 주었다. 점원의 접대 예의도 깔끔했고 분위기도 단정했고. 초콜릿 가득 담긴 케이크를 먹으며 힘을 회복한 다음, 이번엔 싼리툰三里屯에 있다는 소품점에 가 보기로 했다. 이번엔 걸었다.

터덜터덜 걸으면서 주변 구경도 하고 야슈雅秀의류시장도 들렀다. 이 시장은 5층짜리 건물로, 궈마오國貿(국제무역센터 건물이 있는 일대)에 있는 일명 실크 시장, 슈수이秀水시장보다는 러시아풍이 많이 남아 있다. 오가는 사람도 러시아 사람이 꽤 되는 듯하고 방송도 러시아어인 것 같은 말과 중국어가 같이 나왔다. 물론 쇼핑에선 우유부단한 난 눈호강만 잔뜩 하고 다시 열심히 소품점을 찾아 삼만 리.

길을 걷는 건 힘들어도 즐겁다. 소품점을 찾지 못해 싼리툰을 정말 구석구석까지 누비고 다니면서 거의 탐험을 하다시피 다녔고, 나중에는 한 발도 떼어 놓지 못할 정도로 피곤했지만 몰락해 가는 싼리툰을 눈으로 직접 보고, 길 가는 사람을 다 붙잡고 묻다가 결국 담배 파는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소품점을 찾고, 실망하고, 되짚어 걸어 나온 모든 기억들이 지금은 아련하다. 어차피 난 직접 걷고 보고 느끼려고 간 것이었으니까. 정말이지 친구가 하나 있어 밤에도 돌아다닐 수 있었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고, 체력만 좀 더 좋았다면 최고였을 것이다.
2008/02/08 23:30 2008/02/0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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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llyj 2008/02/10 15:4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같이 공부하는 사람중에 중국에서 공부했던 사람이 있어요. 가끔 중국 명칭을 언니처럼 쓰는 것을 들을때마다 언니 생각해요. 그러다가 웃어요. 내가 예전에 '한번 북경은 영원한 북경'이라고 우길때 언니 표정이 생각나서 그냥 혼자 피식거려요.

    • 之窈 2008/02/10 17:47  address  modify │ delete

      네가 그리 말하니 생각이 날 듯하긴 한데, 대체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다냐...;
      뭐 지금도 친구들이랑 얘기할 때는 북경, 남경, 상해 이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