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의형제를 맺는 장면을 보면서 《삼국지연의》를 떠올린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테다. 언젠가부터 난 늘 생각했다. 남자들은 왜 의형제 같은 걸 맺을까? 강오양이 영화 끝에 그 순간 기억한 그 말인 “태어남은 함께하지 못했으나 죽음은 함께하게 해 주십시오”는 참 무섭고도 집요하다. 맹세는 사람을 옥죈다. 그 마음 변할까 두려워서 잡아 두고 싶어서 하는 행위가 맹세 아닐까. 다짐으로도 부족해서 맹세다. 관계를 붙잡는 맹세. 난 가끔 공명과 조운이 느꼈을 소외감을 생각하곤 한다. 영화에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나, 결의를 맺고도 그들의 최초의 군대는 늘 목숨을 조이호에게 맡긴다. 맏형인 방청운이 아니다.
도원결의는 복숭아꽃 만발한 곳에서 술을 나누며 아름답게 그려지지만, 《명장》의 결의는 그렇지 못하다. 외지에서 온 방청운을 믿을 수 없어서, 그를 믿기 위해 하는 의례가 ‘투명장’이라고 하는 의형제 결의다. 무고한 외지인을 죽인 공범 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의형제 결의. 그런 건가. 문득 남자들의 의형제라는 게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동류의식.
세 사람이 각자 갖는 꿈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인지도 필요 없이, 닥치고 의형제다. 그래서 결국 어긋난다. 두 형제의 꿈은 완전히 달랐다. 지향하는 바가 다른데 형제라고 묶어 두다니. 그 의형제 자체를 원하고 사랑했던 사람은 오직 강오양뿐이었다. 그에게는 의형제 자체가 꿈이었다. 그 의형제가 유지될 수만 있다면 다른 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방청운에게 경도되고 조이호를 존경한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의형제 그 자체였다. 하지만 방청운의 꿈은 턱없이 높이 올라가 있었고(아마도 궁극적으로는 자기의 나라를 갖고 싶어졌을 게다), 조이호의 꿈은 지나치게 개인적이었다. 차라리 셋이서 나라를 정복하면 나았을 것을, 방청운은 조직 내에서 성공하고 싶어 했고, 영웅이 되고 싶다고 노래하는 조이호는 정작 조직을 전혀 몰랐다. 화자인 강오양은 두 사람 사이를 방황한다. 그는 방청운을 통해 조직과 사회를 배워가지만, 그의 배덕과 그의 야심을 감당하지 못한다. 여전히 소년인 그는 모든 걸 여인의 탓으로 돌린다(이래서 역사는 만날 여자가 요물이다.).
의형제, 같이 태어나지 못한 대신 같이 죽고 싶다는 의형제. 그럼 하나 죽을 때 다들 자결하지 그러냐. 유비와 장비는 관우 죽었다고 복수한다고 안 죽고, 강오양도 복수한다고 들썩인다. 내 형제를 손대면 복수한다는 게 핵심이면 애당초 같이 죽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아? 해가 서쪽에서 뜨고 강물이 말라야 이 마음이 식을 테요 하는 사랑의 맹세도 참 안타깝지만, 뭐랄까 사랑의 맹세는 그래도 좀 더 절실하고 그 당시의 진심이 담겨 있어서 의형제 맹세보다는 덜 불편하다. 아니 어쩌면 남자들의 의형제 맹세는 남자들끼리의 사랑 맹세일까? 남자들의 연대와 사랑과 우정이란 그런 건가.
형제의 맹세는 결의하는 날 연기 따라 날아갔고, 사람도 모두 흩어졌다(그러게, 각자 개인플레이하고 좋은 사람 만나면 협동하고 이러는 게 좋다니깐).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마음도 먹먹했다.
덧1. 일자무식을 연기하기에는 우리 덕화 오빠가 너무 세련되시었다. 이건 뭐 입 다물고 있으면 덕화 오빠가 관료 출신 같더라. 그래서 몹시 애써서 연기하신 건 알겠는데 오빠가 무식쟁이 연기를 할 때마다 괴리감을 엄청 느껴 버려서 난감했다고나 할까.
덧2. 다케시는 거참 계속 이런 연기만 하려는 걸까. 이제 연배도 있고 경력도 있고 연기도 되는데 언제까지 이런 역으로 만족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본인이 더 뛰어오르고 싶어 하지 않는 듯한 눈치가 있어서 더 심란. 다케시가 화자라, 그 목소리 들으며 영화 보는 행복은 있었다.
덧3. 연걸 오빠는 무협 영화 더 안 찍는다는 소문이 있어서, 사실 이 영화 소식을 들었을 때 또 중국식 뻥인가 했다. 연기 좋더라. 예고 보고 헛소리한 거 정말 미안. 이 오빠는 정말 무술했던 사람이라 이 오빠가 싸우는 장면은 진짜로 예술이다. 안 그래도 필름이 특이해서 그 까끌한 질감이 느껴질 것 같은 황량한 화면에 연걸 오빠가 날아다니면 아트던걸;
덧4. 어떤 면에서는 《색.계》보다 좋았는데, 두 영화를 같이 반추하다가 다시금 난 남녀 관계에 대한 세밀한 부분에는 정말 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가 말해 줘야 그 눈빛이 ‘그런 의미의 눈빛’이었다는 걸 안다. 친구들이 누누이 말하며 가슴을 칠 때마다 아니라고 우겼으나 이제는 인정해야지 싶다. 이건 가르쳐서 될 일도 아니니 어쩌란 말이냐. On_
도원결의는 복숭아꽃 만발한 곳에서 술을 나누며 아름답게 그려지지만, 《명장》의 결의는 그렇지 못하다. 외지에서 온 방청운을 믿을 수 없어서, 그를 믿기 위해 하는 의례가 ‘투명장’이라고 하는 의형제 결의다. 무고한 외지인을 죽인 공범 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의형제 결의. 그런 건가. 문득 남자들의 의형제라는 게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동류의식.
세 사람이 각자 갖는 꿈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인지도 필요 없이, 닥치고 의형제다. 그래서 결국 어긋난다. 두 형제의 꿈은 완전히 달랐다. 지향하는 바가 다른데 형제라고 묶어 두다니. 그 의형제 자체를 원하고 사랑했던 사람은 오직 강오양뿐이었다. 그에게는 의형제 자체가 꿈이었다. 그 의형제가 유지될 수만 있다면 다른 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방청운에게 경도되고 조이호를 존경한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의형제 그 자체였다. 하지만 방청운의 꿈은 턱없이 높이 올라가 있었고(아마도 궁극적으로는 자기의 나라를 갖고 싶어졌을 게다), 조이호의 꿈은 지나치게 개인적이었다. 차라리 셋이서 나라를 정복하면 나았을 것을, 방청운은 조직 내에서 성공하고 싶어 했고, 영웅이 되고 싶다고 노래하는 조이호는 정작 조직을 전혀 몰랐다. 화자인 강오양은 두 사람 사이를 방황한다. 그는 방청운을 통해 조직과 사회를 배워가지만, 그의 배덕과 그의 야심을 감당하지 못한다. 여전히 소년인 그는 모든 걸 여인의 탓으로 돌린다(이래서 역사는 만날 여자가 요물이다.).
의형제, 같이 태어나지 못한 대신 같이 죽고 싶다는 의형제. 그럼 하나 죽을 때 다들 자결하지 그러냐. 유비와 장비는 관우 죽었다고 복수한다고 안 죽고, 강오양도 복수한다고 들썩인다. 내 형제를 손대면 복수한다는 게 핵심이면 애당초 같이 죽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아? 해가 서쪽에서 뜨고 강물이 말라야 이 마음이 식을 테요 하는 사랑의 맹세도 참 안타깝지만, 뭐랄까 사랑의 맹세는 그래도 좀 더 절실하고 그 당시의 진심이 담겨 있어서 의형제 맹세보다는 덜 불편하다. 아니 어쩌면 남자들의 의형제 맹세는 남자들끼리의 사랑 맹세일까? 남자들의 연대와 사랑과 우정이란 그런 건가.
형제의 맹세는 결의하는 날 연기 따라 날아갔고, 사람도 모두 흩어졌다(그러게, 각자 개인플레이하고 좋은 사람 만나면 협동하고 이러는 게 좋다니깐).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마음도 먹먹했다.
덧1. 일자무식을 연기하기에는 우리 덕화 오빠가 너무 세련되시었다. 이건 뭐 입 다물고 있으면 덕화 오빠가 관료 출신 같더라. 그래서 몹시 애써서 연기하신 건 알겠는데 오빠가 무식쟁이 연기를 할 때마다 괴리감을 엄청 느껴 버려서 난감했다고나 할까.
덧2. 다케시는 거참 계속 이런 연기만 하려는 걸까. 이제 연배도 있고 경력도 있고 연기도 되는데 언제까지 이런 역으로 만족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본인이 더 뛰어오르고 싶어 하지 않는 듯한 눈치가 있어서 더 심란. 다케시가 화자라, 그 목소리 들으며 영화 보는 행복은 있었다.
덧3. 연걸 오빠는 무협 영화 더 안 찍는다는 소문이 있어서, 사실 이 영화 소식을 들었을 때 또 중국식 뻥인가 했다. 연기 좋더라. 예고 보고 헛소리한 거 정말 미안. 이 오빠는 정말 무술했던 사람이라 이 오빠가 싸우는 장면은 진짜로 예술이다. 안 그래도 필름이 특이해서 그 까끌한 질감이 느껴질 것 같은 황량한 화면에 연걸 오빠가 날아다니면 아트던걸;
덧4. 어떤 면에서는 《색.계》보다 좋았는데, 두 영화를 같이 반추하다가 다시금 난 남녀 관계에 대한 세밀한 부분에는 정말 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가 말해 줘야 그 눈빛이 ‘그런 의미의 눈빛’이었다는 걸 안다. 친구들이 누누이 말하며 가슴을 칠 때마다 아니라고 우겼으나 이제는 인정해야지 싶다. 이건 가르쳐서 될 일도 아니니 어쩌란 말이냐. On_
2008/02/07 05:11

댓글을 달아 주세요
덧1에 동감입니다. 춘추라도 손에들고 있음직함 관우 모습이던걸요... 결의 장면은 참 생경했습니다. 대의 명분?을 엿보지도 못한것 같아서 급작스러웠습니다; 하긴 그 이전까지 전쟁 영화라 생각했기도 했네요..; 뭐랄까 의학드라마속 권력구조 같은 일종의 실상과 괴리된 허울 좋은 로망 같은 것에 가깝지 않을까요... 아 요즘에도 "의형제" 라는게 있다면 말이지요...
대의명분 자체는 충분하잖아요. 그리고 대의명분이란 원래부터 만드는 거지 정말로 실존하는 것이 아닌걸요. 갖다붙이면 대의명분!
'의형제'는 그렇게 명사화된 표현일 뿐, 기본적으로 남자들끼리의 연대감은 확실히 강렬하지 않나요? 여자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어떤 것이 분명히 있다는 느낌이거든요. 남자들은 그게 너무 당연한 거라 딱히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겠지만요. ^^
아마도 남자들의 연대감, 여자들의 연대감은, 어느 쪽이 더 강하다 덜하다보다는, 종류가 다른 것이 아닐까요. 여자들의 연대감을 부러워하는 남자들의 시선이란 것도 분명 있으니까요. 아마도 상대에 대해 적당히 모르고 적당히 신비감을 갖는, 그리고 각자 결여된 부분에 대한 결핍감 같은 게 있기 때문이겠지요.
하여간 저들의 의형제 결의는, 저도 보면서 언니랑 똑같이 생각했다는. 맹세라는 거 자체가 시간에 따라 변할 수도 있는 어떤 마음을, 상황을, 잡아두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고, 그것에 대한 합의잖아요. 상대에게 죄책감과 책임을 묻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고. 그것이 무고한 외지인을 죽여 '같이 손에 피묻히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게 참 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냉소적이 되더라고요. 하지만 그런 식의 '맹세'로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이란 게, 이해가 되기도 하고...
나도 남녀 간의 강약 차이를 두고 말한 건 아니고, 남자끼리의 여자끼리의 연대감에 대해 각 성들이 서로의 성에 대한 무지와 그에 따른 신비감으로 묘한 느낌을 받는다는 생각은 해. 다만 남자의 연대감은 사회가 사회다 보니 아무래도 드러나면서 보이는 부분이 강하잖아. 그래서 과시적이이기도 하고 그게 남성성의 일부인 듯한 분위기도 있고. 동료 의식도 강하지. 이건 좀 더 말을 다듬고 할 얘기긴 한데, 그때도 말했듯 여기에 대한 여자들의 이해의 한편이 BL이 아닌가 하는 거고. 재미있지 않아? ^^
의형제 결의에 대한 그 말도 동감. 경멸스럽다가도 안쓰럽기도 하고 이해도 되고 그래. 움직이는 걸 아니까 잡아 두고 싶은 거겠지. 의형제 맹세는 결국 사랑의 맹세나 별반 다름 없어. 오오, 이래서 다시 BL계로 가는 건가.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