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대한민국 공용어가 된 영어에, 난 바보다. 얼씨구, 또 엄살이냐, 할 사람도 많겠지만, 정말 영어 쪽은 치떨게 싫고 골치 아프게 모른다. 캐주얼 게임 돌리면서 영어라는 이유로 배경 숙지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달렸다가 망했던 적이 도대체 얼마나 되던가. 얼마 전에 우연히 텔레비전 공중파에서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영어 단어를 일상용어처럼 툭툭 던지고, 그걸 또 그대로 자막 처리하는 걸 보면서 내가 우리나라에서 외국어로 소외당하는구나 하며 얼마나 처절해졌던가. 아 씨, 나 진짜 영어 싫어.

그 와중에 내가 할 줄 아는 외국어라고는 (잠시 먼 산 보고 한숨 한 번 쉬고) '그나마' 중국어뿐이다. 요즘은 어린 아이들부터 중국어를 가르치네 어쩌네 난리지만, 여하튼 내 세대에서 중국어는 좀 멀다. 그래서 활용도도 아주 적었다. 저번 학회에서 어떤 출판사 사장은 2010년 후의 국내 중국어권 시장의 확장을 꿈꾼다고 했지만, 내가 그 말에 동의하거나 말거나, 나 그쯤 되면 퇴물이라 쓸 데도 없을 거고 어쨌든 나와는 그다지 관계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 투덜. 그런데 새로운 발견을 했다(실은 꽤 됐음;;;).

우연이었는데, 암흑세계의 자료를 구하려고 이리 뒤지고 저리 뒤지다가, 일본어 원문을 타이핑했더니, 중국어 자료가 몇백 개나 주르륵 뜨는 것이었다. 할렐루야! 그리고 유레카! BL이었다, 물론. 하긴 지상의 암흑판을 가지고 있는 유저는 거의 중국인과 한국인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마당인데, BL이라고 예외겠냐. 다만 다른 자료, 그러니까 음원이든 게임이든 동영상 같은 건 받으면 그냥 쓸 수 있지만, BL계열은 텍스트를 읽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나 처음으로 내가 중국어 읽을 수 있다는 데 감사했음. -_-v (← 겸손한 브이)

타이완 같은 경우는 일본 만화 잡지와 단행본이 거의 실시간으로 들어가는 편이라, 엔간한 일반 만화 단행본은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 중국, 훗, 검열 열심히 해 봐라. 장난 아닌 수위의 BL도 말짱하게 돌아다니더라. 검열 같은 거 생각하면 늘 우스운데, 볼 사람은 다 본다. 우리나라는 아니었나. 하여튼 연재물인 BL이나, 좋아하는 작가인데 다른 거 뭐 더 없나 해서 검색하면(작가 이름 원문으로 치기) 일본어와 중국어 자료가 줄줄 뜬다. 덕분에 여러 작가의 최근작과 예전작을 볼 수 있었음. 동인지도. 호호.

또 하나 재미있는 건, 이 덕분에 일본판/중국판/타이완판/한국판을 비교할 수도 있다는 점. 예전에는 중국판이 타이완판을 그대로 옮기면서 간체로 변환만 하는 거 같더니, 아니었다. 하긴 단어도 문법도 많이 달라졌고 달라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역자마다 번역이 다르다. 한국판 번역도 마찬가지. 정말 번역은 역자마다 다르게 나온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한때는 이거 비교하면서 노느라, 이미지 파일이라 용량도 크지 않은데 엄청나게 나온 적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타이완판 선호. 아직 문장맛이 남아 있는 곳이라. 말이 조금 어렵다 싶으면 중국판을 보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근본적인 문제인 일본 정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어려운 건 어쩔 수 없다.

난관이라면, 미즈시로 세토나의 최근작 경우는 연재 자체도 일본 안에서 휴대폰으로 해서 해적판이고 중국어판이고 떠돌지를 못했다(대신 난 우리나라 블로거의 도움으로 대충 봤다. 역시~). 이게 그대로 단행본으로 나오는 바람에 이건 구하기가 힘들다. 원서를 구입하지 않는 한 재빨리 볼 수가 없더란 말이지. 매체의 변화에 암흑계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국내에서는 아직 비싼 돈 주고 산 책을 스캔해서 올리는 용자가 없고, 일본에서는 슬슬 나오는 듯. 다음 달 초까지는 다 받을 수 있으려나.

어쨌든 생전 가야 혼자 당시 읽고 중국 원서 읽을 때나 쓸모 있을 것 같던 중국어가 이렇게나 훌륭한 활용도를 보이다니 놀라울 뿐이다. 기쁘기도 하고. 아니, 뭐라도 좋으니 내가 배운 건 날 위해 서비스해야 하는 거잖아. 좋은 정보는 언제나 영어이고, 중국어로는 내 일 처리만으로도 급급했는데, 이렇게 나 자신을 위해 쓰고 있자니 기쁘기 한량없다. 오늘도 뭐 하나 급 당겨서 받는 중인데, 엄청나구나. 언제 다 읽냐. 흐.
2009/06/23 17:16 2009/06/2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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