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이 하 복잡한 나머지 뭔가 종합적인 사고를 하고 싶어서, 마침 반값 할인까지 하기에 냉큼 샀다. 과연 언제 읽으려나 싶었는데 사고 나 주시면서 병원에서 읽었다. 병원에 갇힌 데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전제가 없었던들 다 읽지 못했을 책이다. 죽는 줄 알았어. 헥헥.

참신하고 통합적인 사고를 위해 그랬나 싶은 편집인데 에러야. 편집진이 얼마나 머리 아팠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지만, 사공이 많았든가 의욕이 넘쳤다가 무너졌든가 했나 봐. 원문 병기, 찾아보기, 각주, 인물 설명에 일관성이 하나도 없다. 펼친 면의 두 쪽에 인명은 넘쳐나는데 양쪽 여백 각주 자리로 들어가는 사람은 두엇. 이렇게 일관성이 없다 보니 뒤의 인물 찾아보기에서 쪽수가 어긋나는 경우도 보인다.

그리고 양쪽에 여백 두고 거기에 각주나 가외의 글을 넣는 시도는 참 위험하다. 텍스트에 대한 집중력을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심지어 별색이다. 이렇게 가서 성공하기란 힘들다. 아예 《욕망의 사물》처럼 확실한 실험을 하든가, 《서울은 깊다》처럼 별색과 배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어야 한다. 새로운 시도는 하고 싶지만 대중성은 잃고 싶지 않았던 걸까.

책 얘기하면서 본 내용 이야기는 언제 하느냐 하면, 지금부터인데, 할 말이 그다지 없다. 나 이제 서평에 안 속을 거얏! 이거 완전 상찬뿐이어서 그게 더 수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내가 책 읽다가 얼마나 기가 막혔냐면, 우리만 이럴까 싶어서 병원에 찌그러져 있는 주제에 손바닥만 한 내 휴대폰 화면으로 미국 아마존까지 뒤져서 서평 읽었음. -_-; 그거 보고 나서, 내가 참 수준이 낮다는 걸 깨달았으니 헛짓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만.

통합적 사고는 둘째 치고, 분절돼서 나오는 저 사고법들과 연관된 일화들을 다 이해할 수 있단 말야? 와, 난 바흐의 화성법 이야기부터 물리학과 수학으로 이어지는 그 현기증 나는 일화 속에서 길을 잃었는걸. 읽다가 또 그놈의 손바닥만 한 휴대폰으로 막 위키 뒤지고. 여기서 건진 거라면, 문득 오일러의 공식이 아름답다고 느꼈다는 거? 나 같은 수맹에 수학맹이 ‘문득’ 이렇게 느꼈을 정도면, 수학을 하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아름답겠냐.

무엇보다 읽으면서 제일 열 받은 건 아전인수. C와 이중톈易中天을 뒷담화하면서 늘 하는 말이 아전인수의 고수인데, 이 책도 만만치 않다(그래도 이중톈은 꽤 영리하단 말이지.). 되는 대로, 손 가는 대로 끼워 맞추는 데 도통했더라. 뭐야, 융이나 아인슈타인이 지금 그런 결과물을 내놓았으니까 그 인간들이 예전에 성 쌓기 놀이하고 바이올린 연주한 게 천재적 사고법의 도움을 받은 덕이라고 그냥 밀어붙일 수 있는 거야?

아니, 실제로 그럴 수는 있다. 이 책에서 가장 힘주어 주장하는 내용이 수학하는 애들 수학책만 잡고 있지 말고, 음악하는 애 악기만 잡지 말고, 문학하는 애 책만 파지 말 것이며, 과학하는 애 계산기만 붙잡지 말지어다 이런 건데, 그러니까 이런저런 삽질과 뻘짓 좀 하면서 하늘도 보고 바다에도 들어가 보란 소리잖아. 그건 알겠는데, 그 주장이랑 ‘천재들의 자유로운 생활과 사고’를 잇는 방식이 어째 이상하더란 말.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다. 셰익스피어도 아니고,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건 아니잖아. 너무 하나로 정리하지 말아 줘. 우울하다구.

하나 더 얹자면, 이렇게 요란하게 말하지 않아도 아마 교육서에서는 다 이 얘기 나올걸. 그래서 책을 다 읽은 뒤에는 원서 편집자와 마케터의 힘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편차는 있지만, 대체로 여기에 나오는 사고법을 느껴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텐데, 그러니까 이거 애들 둔 학부모용이지? (아, 그러니까 나 책 잘못 산 거? 그 화풀이 중? 그치만 삼성 어쩌구도 사서 본다며? 이걸로 정말 참신한 사고에 도움이 돼? 정말?) 이 책 보고 있으면 왠지 요즘 애들은 무지개 쫓아간다고 소나기 뒤집어쓰고 산길도 들어가 보지 못한 거 같잖아. 마지막으로, 이 책에 있는 사고법 말인데, 내가 다소 수준 차이는 있어도 거진 다 해 본 것 같거든? 그래야 나 이 모양 이 꼴이야. 아무렴 어때,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되지.

덧. 《하이퍼그라피아》는 쓰기 중독에 대한 개인적인 고찰과 술회인데, 생각하는 문제라든가 쓰는 문제에 대해 솔직하고도 깔끔하게 기록하고 있다. 목적하는 바가 다소 다르긴 하지만, 이 책이 백만 배는 낫다.
2009/06/18 18:27 2009/06/1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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