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내내 난 일찍 일어나지 못했다. 그간 늦게 일어나던 잠버릇 덕에 평소보다 약간 일찍 일어나는 정도였다. 게다가 몸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다. 들어올 때쯤에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을 정도로 몽롱한 심신이었다. 더하여, 이게 은근히 중요한 이유라고 보는데, 생각해 보면 베이징은 내게 ‘지나치게’ 익숙한 곳이었다. 최초로 간 것은 어학연수였으니 사계절 다 보며 살았고, 나중에도 시험 준비라고 방구석에 처박혀 있긴 했지만 반년을 살지 않았던가. 여행지에서 가질 법한 상큼한 긴장감 따위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다. 익숙하고도 편안하달까. 옆집으로 놀러온 기분이었다.

일찍 일어나면 6시에 한다는 라틴어 미사나 영어 미사에도 참가해 보고 싶었고, 아침 시장이나 출근하는 직장인을 위한 간단한 아침 식사 좌판에도 껴 보고 싶었는데, 이건 그냥 다 꽝이 났다(앞으로도 내가 베이징 가서 저거 하려면 하루 버리는 셈 치고 밤새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누가 같이 간다면 모를까.). 9시인가 10시쯤 일어나서 대충 씻고 여행책 좀 뒤적이다가 일단 전날 좌절된 베이징국제도서전을 가기로 했다.



전날 물건을 사느라 왔다 갔다 하다가 길을 익힌 왕푸징의 둥팡신톈디광창東方新天地廣場의 북쪽 길로 갔다. 거기에는 전날 봐 둔 UBC 카페가 있었다. 출신은 일본인 듯(카페 이름이 ‘上島咖啡’)한데 타이완에서 다시 중국으로 올라왔다고 어디서 들은 것 같다. 여하튼 정신을 차리기 위해 커피를 마시러 들어갔다. 비쌌다. 커피는 가격에 비하면 사기고, 베이징에서 마시는 커피라고 생각하면 괜찮았다. 그 자리에서 갈아서 내려 주긴 했다. 앉은 김에 모닝세트를 시켜서 먹었다. 리필을 하려면 원래 가격에서 10위안을 빼 준다(다시 갈아서 내려 주기 때문에 용서함). 모닝세트도 가격 대비 용서 가능. 뭐, 커피 자체가 너무 비싸서 이미 맛이 갔으므로. 커피와 모닝세트를 기다리면서 비치돼 있던 잡지의 가네시로 다케시 기사를 읽었다. 영화 《상성》 관련 기사로 기억한다.

도서전을 하는 곳에 가는 버스를 알아보기 위해 버스 정류장들을 누비며 할랑할랑 걸어 다녔다. 왕푸징대로로 죽 북쪽으로 걸어 올라가면서 뜨거운 여름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길과 사람 구경을 했다. 사실 내게 베이징 여행은 어디 명소를 가기 위해서라기보다 베이징과 사람들이 얼마나 변했는지 다들 잘 있는지 안부 확인하러 가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그러다 안 가 본 곳 있으면 또 가 보고 이러는.



왕푸징 성당은 여전했다. 그러나 2003년 가을에 성당 맞은편에서 커피를 마셨던 스타벅스는 사라졌고 또 열심히 공사를 하고 있었다. 성당과 그 옆 호텔만이 그대로였다. 베이징의 변화는 정말 빨라서, 2003년 이후 찾아간 이번 여행에서도 혼란을 느낄 정도였다. 나중에 내가 살던 곳 근처도 가 봤는데, 역시나 전철역과 몇 곳 빼고는 또 다 바뀌어 있었다.

망연히 성당을 보며 넋을 놓다가 다시 버스 노선을 알아보러 북으로 올라갔다. 베이징은 역사적으로 오래된 도시지만 동서남북의 구분이 잘된 도시다. 서울 같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를 골목보다는 동서남북으로 잘 나뉜 길과 역시 잘 나뉜 사합원四合院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베이징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오른쪽과 왼쪽이라는 표현만큼 많이 쓰이는 것이 동서남북이다. 북쪽으로 얼마나 가면, 동쪽으로 가면 이런 식의 표현이 종종 나온다.

그러나 왕푸징 거리의 끄트머리라고 할 수 있는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 서점 앞 버스 정류장까지 가도 국제전람회중심國際展覽會中心으로 가는 버스는 없었다. 길 가는 사람을 죄 붙잡고 물어도 모르더라. 이미 대낮이었다. 기운이 좍 빠져서 그냥 상무인서관 서점으로 들어가 버렸다. 상무인서관은 11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출판기구다. 대체로 여기서 나온 책은 믿을 수 있다. 서점에야 물론 다양한 출판사의 책이 꽂혀 있지만. 서점 안은 시원했고 조용했다. 사람은 제법 있었지만, 전혀 시끄럽지 않았다. 2층도 서점이라고 알고 있는데 거기까지는 올라가지 않고 1층에서만 책을 둘러보다가 도서전을 위해 나왔다. 다시 와야지 했는데 그러지는 못했다.

결국 도서전을 가는 버스를 위해 열라 걸었던 나는 버스를 포기했다. 택시를 탈까 고민하다가, 아점으로 큰돈을 썼다고 자책하던 중이라 다시 왔던 길을 짚어가 전철을 탔다. 그러나 이후, 여행객으로서의 물가 감각을 익혀 택시 잘만 타고 다녔다. 훗.

* 사진은 토이카메라. 그래서 사진이 아주 재미있다;;;
2007/12/29 01:41 2007/12/29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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