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칠게나마 제가 본 《적벽대전》을 정리해 봅니다. 몹시 길긴 한데, 말 그대로 거칠게 적은 거라 보시는 분들의 편의를 위해 일부러 이미지를 사이사이 넣거나 뭐 어떤 편집의 묘미를 살리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수정도 없이 후다닥 적고 보니 너무 뻔한 걸 쓴 것 같기도 해서 쪽도 팔리고;;; 또 하나,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은 읽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정사에서는 소략하지만 연의에서는 방대한 적벽대전. 연의가 사실은 3, 허구가 7이라고 하는 말을 종종 듣지만, 적벽대전 부분만큼은 사실이 1, 허구가 9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릴 때 읽으면서는 그저 홀려 있어서 몰랐지만, 적벽전의 분위기는 전체 삼국지에서 약간 뜹니다. 특히 조조 진영이요. 너무나 조조네답지 않잖아요. 그게 이번 《적벽대전》에 제대로 나온 듯해요. 그러니까 이미 베이스부터 안습?

1편을 봤을 때는 정사와 연의를 섞고, 적당한 자기 나름의 개성을 더한 우위썬 표 적벽전이 나오나 했습니다. 주유가 주인공이라고 할 때도 역사적 공정성인가 하는 정도였어요. 연의에서 주랑은 너무 불쌍하잖아요. 그 잘난 남자가 질투심에 휩싸여 피 토하고 죽는 설정이라니. 그래서 과장되긴 하지만 1편의 피리 장면도 넘어가려고 했죠.

2편까지 보고 나서야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습니다. 우위썬의 《적벽대전》에서 정통은 오나라입니다. 정사가 위나라를 정통으로, 연의가 촉나라를 정통으로 보듯, 우위썬에게는 오나라가 정통이고, 그 정통의 가치를 상징하는 인물이 주유입니다. 그는 완벽한 인물입니다. 그 피리 장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의 얼굴과 오나라의 강산이 오버랩되는 건, 그가 그 나라를 상징하는 인물이기 때문이죠.

가장 불필요해 보였던 소교는 다른 의미의 오나라 상징입니다(개인적으로 린즈링의 연기와 카메라는 안습을 넘어서 안폭이었으므로 더 말을 않겠습니다. 진짜 들어내고 싶어요, 얘 나오는 모든 장면.). 주유와 소교는 둘이 하나인 완전체입니다. 두 사람은 오나라를 보여 주는 문명의 상징 다도, 병법화된 고도의 무예,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사심을 버리는 희생정신, 적조차 죽이지 않는 관용, 전쟁의 참혹함에 가슴아파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1편에서 망아지의 순산을 위해 일하다 말고 달려가는 주유, 이미 와서 산파 역을 하던 소교를 보세요. 그리고 2편에서 전쟁을 코앞에 두고 뜬금없이 검무를 추는 주유의 모습을 기억해 보시고요. 그 장면 보고 전 어이가 없었지만, 예술의 경지를 보이는 소교의 다도, 춤과 시(병법 문구를 시처럼 읊죠. 고도의 세련입니다.)로 표현되는 주유의 검무는 두 사람이 음과 양처럼 완전한 오나라의 상징이라는 걸 드러냅니다.

그래서 여기서 잠깐 언급하자면, 《적벽대전》에는 여자가 없습니다. 손상향은 여자가 아니에요. 여성형일 뿐이지. 같은 의미로 소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상화된 여성, 상징화된 여성형입니다. 동등한 의미와 깊이를 지닌 음과 양에서, 소교는 그 음의 자리를 상징하는 것뿐입니다. 조조 쪽으로 간 건 그런 맥락이죠. 그리고 조조의 비천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요.

그것이 전편에 거쳐 조조가 유난히 찌질하게 그려지는 이유입니다. 고도의 문명을 가진(실제로 중국의 고급문화는 강남에서 발원하지 강북에서 발원하지 않습니다. 다도도 강남 쪽이 훨씬 까다롭죠. 놀이 중 하나인 마작도 강남에 비하면 강북은 고도리보다 쉽습니다.) 오나라는 남의 나라를 침공하거나 타인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조조는 그런 고급한 강남 오나라를 탐합니다. 조조가 내내 자신이 진 적 없고, 무력으로 모든 걸 제패했으며 이제 오나라만 손안에 넣으면 모든 게 이뤄진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소교에 대한 집착도 그렇게 풀립니다.

조조는 강북에서 내려온 사람들 중 유일하게 문화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 막사에서 차 마시는 사람은 조조뿐입니다. 그럼에도 적진으로 뛰어든 소교에게 무참히 무시를 당하죠. 소교가 마지막에 말하잖습니까. 승상은 차를 모르시는군요(‘품차品茶’라는 표현인데, 이것도 참 동사가 무시무시합니다만, 여기서는 통과합니다.). 뛰어 봤자 야만인인 겁니다. 따라서 조조는 더더욱 폄하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조조는 거칠어도 문화인이었고, 뛰어난 시인이거든요. 이 사람의 이 부분이 살아나면 오나라의 ‘위대함’이 죽습니다.

2편의 앞부분에서 열병으로 죽은 환자들을 적진으로 보내고, 예를 갖춰 묻어 주자는 주유와 열병으로 죽은 이들이니 화장을 해야 한다며 합리적인 장례법을 제시하는 공명, 그렇게 실행하는 오나라와 그 시체들을 바라보며 비장해하는 오나라 진영을 함께 보여 주면서, 이어진 배 위에서 〈단가행〉을 호쾌하게 읊으며 술을 마시는 조조를 교차 편집한 장면은 그런 의미에서 예술입니다. 단박에 조조도, 〈단가행〉도 무너지니까요. 〈단가행〉은 그렇게 불릴 시가 아닙니다. 정말이지, 그 장면에서, 장펑이의 멋진 목소리와 중국어를 들으면서,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조조는 마지막에 그 전쟁의 와중에도 자기 방에 틀어박혀 지도만 쳐다보며, 다 먹었는데 여기만 못 먹었어를 웅얼거리는 찌질이로 제대로 나와 줍니다. 되지도 않는 문명에 대한 소유욕으로 무너진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 주는 거죠. 그래서 소교의 차 한 잔만 하고 가라는 말에 넘어가는 겁니다. 소교와 그녀의 다도는 야만스러운 조조가 결핍되었다고 느끼는 문명 자체니까요.

마찬가지로 오나라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인물인 주유에게도 인물들이 꼬입니다. 1편에서부터 주유 한 사람을 둘러싼 팬질이 좀 심하긴 했죠. 다들 영웅들의 눈빛이 끈적거린다는 둥 하며 시끌시끌했어요. 2편 끝까지 그러잖습니까. 이건 뭐 BL 계열과 관계없는 이들까지 그럴 정도이니 할 말 다했습니다.

조조와 소교처럼, 주유와 주변 인물도 그리 묶입니다. 아무리 팬이라도 가네시로 다케시가 영화와 개인사를 구분 못하고 량차오웨이를 그렇게 볼 리는 없잖아요. -_-; 단언컨대, 우위썬 지정입니다. 조자룡이 완전 바람난 남편처럼 유비를 내던지고 주유한테 달려간다는 설정이나, 유비에게 대드는 관우와 장비나, 기밀이라고는 해도 주군이 등지고 떠나는데 주유 곁에 남는 공명이나 모두 완전체 주유에 대한 숭상입니다. 그래서 공명이 빠진 전쟁 장면에서는 바로 조자룡이 투입되어 둘이 검무 듀오를 보이죠. 눈은 즐거웠습니다만.

오나라를 인정하고 돕고 숭상하면 ‘친구’가 될 수 있지만, 그걸 소유하고자 하면 적이 됩니다. 유비 진영은 오나라를 ‘사랑’했으므로 친구가 됩니다.

영화 막판에 주유가 조조에게 말합니다. 너 온 곳으로 돌아가라고. 그 전인가 그 후에는 이렇게 말하죠. 우리는 친구라고. 다들 돌아서면 적이 된다는 조조의 말에 주유가 그리 대답합니다. 이 대답을 쓰려면, 그리고 삼국이 갈리는 단초를 보여 주지 않으려면 화용도의 관우 같은 건 나와선 안 됩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모여 함께 조조를 ‘물리칩니다’. 죽이지 않습니다. 전쟁은 싫지만 칩입자는 단호히 물리친다. 인명을 아끼는 마음이 있어 유장한 태도로 적을 죽이지 않고 자기 땅으로 가라고 한다. 상징적인 죽음인 상투 끈 자르는 걸로 끝(요건 손권이 하죠. 어떤 면에서는 손권의 성장 영화입니다. 자주 안 나와서 그렇지. 그리고 주유의 위대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선을 넘지는 않는다는 걸 보이기도 하고요. 유가적 질서죠.). 그리고 마무리로 이 전쟁에서 승자는 없다는 멋진 대사를 읊으며 퇴장.

모든 것이 하나로 향합니다. 오나라, 그중에서 주유와 (새 생명을 품고 있는) 소교. 이 자위自衛적이고 자족自足적인 영화는 이렇게 끝납니다. 이런 논리로 보면 버릴 장면이 정말 거의 없습니다. 다케시가 2편 내내 부담스런 얼굴로 배시시 웃고만 있어도 할 수 없습니다. 나서면 안 되거든요.

문제는 그래서 우위썬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중화주의 내부의 문화권 반발인가 싶기도 하고, 반환된 홍콩에 남지 않고 할리우드로 떠 버린 우위썬이 베이징(강북)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발악인가 싶기도 합니다. 글쎄, 이 구슬 서 말에 바늘과 실을 따로 들고 버벅대던 제게 바늘에 실을 꿰어 구슬을 엮도록 일깨워 준 C는 이나저나 한 도가니 안으로 끌어들여 삶아 버리는 중국의 역량이 무섭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전 아직 확신하지 못합니다. 다만 전 중국 관련으로 아는 바도 공부한 바도 적고, C처럼 걸어 다니는 중국통은 아닌지라 일단 C의 다음 의견을 기다려 봅니다. 덕분에 중국 영화를 좀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나름의 수확인지도 모르죠.

마지막으로, 정말 조조와 장펑이는 아쉽습니다. 우위썬의 논리로는 할 수 없고, 거기에 제대로 망가질 수 있는 것도 장펑이니까 저 정도였지 싶긴 하지만, 장펑이 진짜 멋졌거든요. 농담 아니고, C와 전 극장에서 나와서 이구동성으로 장펑이 찬양했습니다. 목소리와 연기의 힘이나 색깔, 발음, 조절력이 멋졌어요. 내용 다 떠나서 장펑이가 입을 열면 저절로 집중하게 되더군요. 중국 쪽의 배우 중에 연륜이 꽤 되면서 일정 경지에 이른 사람이 몇몇 있는 듯한데 장펑이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전에 말한 천다오밍도 그렇죠. 이번에 조자룡을 맡은 후쥔도 미래가 기대됩니다.
2009/01/28 12:22 2009/01/28 12:22



Trackback URL : http://textgarden.net/blog/trackback/132
open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