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이 주에 한 번씩 손톱을 자를 때마다 늘, 시간 참 잘 간다 생각한다. 구월이 눈 깜짝할 새 가더니 시월도 벌써 중순. 아침에 알람을 끄려고 휴대폰을 열다가 날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날이 벌써 이렇게 됐구나. 매일매일 날을 확인하고 일정을 확인하지만, 문득 그 숫자가 확연히 느껴질 때가 있다. 이게 진짜 시간을 느끼는 때다. 머릿속에 날짜와 요일을 집어넣어 놓고도, 금요일이면 바꿔 가져오는 운동복을 목요일에 챙겨 가기도 한다. 집에서 일을 해 주말이고 평일이고 구분이 없어지면서 더 심해졌다. 올 가을은 아마 그냥 이렇게 보내나 싶다.

- 침 맞고 운동하면 하루가 그냥 간다. 그렇다고 일이 기다려 주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사람들은 집에 일하니 시간 많아서 좋겠다고 한다. 정말 모르는 말이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진실로 시간이 돈이다. 회사는 하루 이틀 잠시 땡땡이 쳐도 월급이 나오지만, 집에서 일하면 노는 만큼 돈이 적어진다(회사 다니는 사람들이 집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나처럼 비효율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결국 의사 선생님과 상의해서 이틀에 한 번 가는 걸로 합의했다. 세 곳의 일이 ‘제대로 된’ 진행을 기다리고 있다. 잠을 줄이고 싶은데, 불가능하다.

- 《망량의 상자》의 애니화가 먼 훗날 얘기인 줄 알았더니 벌써 두 번이나 했더라. 일본과 실시간으로 만화영화를 받아 보는 일은 거의 한 적이 없는데, 이건 작품이 작품인지라 어제 일하면서 다운 받고, 잠을 좀 덜 자기로 하고 앉아서 봤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어떻게 이걸 애니화할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문장이 그래서 그렇지, 이 소설은 정말 무섭지 않나? 바탕 설정부터 사건과 그 결말에 이르기까지 끔찍하지 않은 게 없는데. 처음의 그 상자 속 소녀를 보는데, 아무리 클램프 그림에 만화영화라고 해도 소름이 끼쳤다. 클램프가 그간 지녀 온 정서를 보면 이 작품의 작화를 맡는 것도 어울리지만, 그림은 참 이질적이다. 심지어 세키구치는 어찌 그리 멀쩡하게 나오는 거냐. 저래서는 그냥 서생 출신 소설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쇼와 시기에 그런 교복이라니. 기바 성우는 너무 직장인 같고. 좀 더 강골이길 바랐건만.

별개로, 중고등학교 시절은 나약하고 섬세하고 에너지 넘치고 거칠며 그래서 더욱 비밀스럽고 광기가 넘실댄다. 가나코와 유리코의 모습은 그 단면을 잘 보여 준다. 역시 청소년기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때의 날 돌이켜 보면 더욱더. 순수한 에너지, 원초적인 혼돈이라 매혹되는 사람도 많지만, 난 그저 그 시절의 에너지와 빛들을 조용히 꺼가면서 평범하게 늙고 싶다. 용렬하게.

- 이 정신없는 와중에 갑자기 키스케가 너무 보고 싶어져서, 엊그제는 그간 안 본 《블리치》의 나머지를 받아 봤다. 목적은 과거 회상편. 아, 정말 키스케 보고 싶어 한 지가 오래됐는데 참고 참다 엊그제 확 터진 거다. 일하다 말고 열심히 봤다. 더해서 내 보물창고에 꽁꽁 봉인해 둔 애니메이션의 키스케 등장 장면 목소리 파일을 한 번씩 다 들어 주었다(이쯤 되면 정말 엄청난 애정이지 않냐? -_-V). 작품이 산으로 가든 바다로 가든 정말 키스케 하나로 버틴다. 소소하게 바라는 바가 있다면, 이 작품 끝나기 전에 아이젠 놀라는 꼴 한 번만 봤으면 하는 거. 이 자식은 전지전능이냐?

- 북스피어에 가서 책을 몇 권 샀는데, 예쁜 북스피어 쇼핑 가방을 들고 들어온 그대로 한 번도 안 열어 봤다(지호가 이 사실을 알면 기함을 하겠지;;;). 북스피어 책 달랑 한 권 읽었다고 하니까 지호가 쫙 째려보더라. 그러게 북스피어 책 좋다고 노래하면서 정작 난 한 권밖에 안 읽었다는 게 좀 심하긴 하다(아니, 글 수정하다 생각났는데 나 《아발론 연대기》 박스세트로 샀다!!!). 그래서 읽으려고 미미 여사의 《괴이》도 샀건만, 《살인의 해석》에 걸려 있다. 문제는 《살인의 해석》이 앞부분에서 막혔다. 재미가 없다. 게다가 프로이트와 융에 대한 묘사가 초반부터 대단히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이라, 융 좋아하는 나로선 읽을 맛이 반감된다. 여기에 또 있다(맙소사;). 역문이 낯설다. 영어권 소설을 안 읽어 본 것도 아닌데, 문장 읽기가 불편하다. 읽기를 그만두고 싶지만 잡았으니 끝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아직 발을 못 빼는 중. 머리야. -_-;
2008/10/20 10:33 2008/10/20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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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줏빛노을 2008/10/20 14:5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전 아발론 연대기 박스세트로 사지는 않았는데 2~3권씩 사모으다보니 어느덧 다 모았네요 ㅎㅎ
    뭐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란슬롯 까지만 보고 못보고 있습니다만 저런책은 그냥 방 책장 한구석에 꽂아두기만
    해도 뭔가가 든든해지죠 ㅎㅎ

    그나저나 빨리 나아야 책도 제대로 보는데, 한손만으로 보려니까 영 불편해서 책을 놓고 있습니다 ㅎㅎ
    최소 2~4주에서 6개월이라는데 얼마나 걸릴지 ㅠㅠ
    (뭐 안돌아오면 낭패구요 -_-)

    뭐 비바 리딩 라이프 입니다 ㅎㅎ

    • JIYO 2008/10/20 23:32  address  modify │ delete

      저보다 많이 보셨네요. 전 사 놓고 뿌듯해서 안 봤습니다. 하하하;;;
      예전판으로 두 권 정도 봤던 듯한데 보려면 처음부터 다시 봐야죠. 이젠 저 세트 보면 뿌듯함은 간데없고 미안합니다.

      말씀 보면 금방 쾌차하실 것 같은데요? 원기탱천해 보이셔요. 몸조리 잘하시길.

  2. 비밀방문자 2008/10/20 22:0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JIYO 2008/10/20 23:40  address  modify │ delete

      새 회사가 그렇게 좋습니까, 그렇게 좋아요? 블로그도 막 방치하고. 가끔은 그냥 소식이라도 전하면 좋을 텐데.

      근데요, 《망량의 상자》를 처음 접하시는 것이 클램프 작화의 애니라니 미치고 팔짝 뛰겠습니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부탁이오니 소설 먼저 읽어주세요. 처음에 받은 임팩트는 무시 못한단 말이에요. 앞으로 교고쿠 나쓰히코 보실 때마다 클램프 작화의 인물이 움직이면 어떡해요. 난 그 꼴은 못 봅니닷!!!!!!!!!!!!!!!!!!!!!!!!!!!!!!!!!!!!!!!!!!!!!!!! 엥, 제발.
      (이 정도 난리를 치면 이 애타는 심정을 좀 이해하시어...; 옵빠!)

      또 근데요, 혹 생일이 팔월말?

    • 비밀방문자 2008/10/21 08:09  address  modify │ delete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JIYO 2008/10/21 11:07  address  modify │ delete

      클램프가 저 소설 작화한다고 했을 때, 솔직히 클램프 팬 아니면 소설 본 사람은 모두 어이가 없었을 겁니다. 클램프는 자기네 만화나 애니화하면 된다고 봐요. 다른 것들도 손대는 듯하지만 관심 밖.

      뭐, 원작을 보시면 제가 왜 이러는지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죽어도 안 어울린다는 건 아니지만, 상당히 어긋난달까요(개인적으로 클램프 그림이 미묘하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요.). 읽으시고도 '클램프 괜찮은걸' 하시면 포기해야죠. 그러나 뭔가 마음에서 뚝 하고 부러질 것 같습니다;

  3. 다오얀 2008/10/22 16:2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침에만 계신 분이 왠 침이랍니까. 관리를 하셔야지 쯧쯧.

    • JIYO 2008/10/23 00:22  address  modify │ delete

      아니, 당신이 어떻게 여길!!!!!!!!!!!!!!!!!!!!!!!!!!!!!!!!!!!!!!!!!!!
      여기는 당신이 관심할 내용 없으니 잊으셈. 잊으셈. 잊으셈.
      여기저기 이사 다니는 동안에 까먹은 줄 알았더니 어찌 찾아오셨소그래. 재주도 좋으시지.

      집에만 있어서 침을 맞는 거 같기도. ^^;
      걍 체력이 바닥나서 맛이 갔다고 하는군요. 일도 못하고 골골 졸아요. 하하하; ㅠ.ㅠ